무명작가와의 잡담
햇살이 좋은 날이다. 카페 문을 여니 종업원이 웃으며 인사한다. 여기 종업원은 참 친절하다. 그는 저기 있다. 긴 코트가 많이 걸렸지만 그의 코트만큼 낡은 것은 없다. 시선을 조금만 더 움직이면 의자의 고리에 걸린 낡은 모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커피 잔에서 김이 올라오지 않는 걸보니 금방 시킨 것은 아닌가보다. 굳이 보지않아도 카페오레라는 것에 내 전재산을 걸 수 있다.
국외이주자, 무명작가, 유럽 특파원. 다양한 것으로 그를 표현할 수 있지만 털썩 앉았을 때 잠시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을 맞추고는 다시 글쓰는데 여념하는 무심함은 가장 그다운 모습이다. 속지를 양가죽으로 감싼 수첩. 페이지 홀더를 고무줄로 한 '레 카르네 몰스킨'.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수첩이라는 명성은 오히려 그들의 믿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승냥이가 먹잇감을 움켜쥐듯 그는 노트를 품안 깊숙이 안고 쓰는 듯 보였다. 언젠가 미출간 원고와 복사본이 든 가방을 통채로 잃어버려 망연자실한 그를 봤으니 지극히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주말엔 여기 오지 않는 듯 하더군."
"경마나 경륜을 하러 다니곤 하네."
"자네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로 스키를 타러 가기도 하지."
"의외군. 뭘 쓰는가?"
"전에 말한 그 이야기네."
"아~ 성불구가 사랑을 하는 그 괴이한 이야기말인가? 설정은 마치 성의식을 배제하는 장치가 되는건가? 생각할수록 특이하네. 제목이 뭐였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그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낡고 좁은 아파트보다 이 카페에 더 오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문한 카페오레가 막 나왔다. 따뜻함이 가시기 전에 깊이 한 모금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