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
쾌락이든, 성취감이든, 플러스(+)라 여겨지는 감정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의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어느새 너무 오랫동안 쉽게 소비되어 진부할 지경이 되었지만,
그 단어가 주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당신에게 '반드시'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인지하고 있느냐 아니냐는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반드시 싫은 일은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반드시 행복할 일을 떠올리기란 마냥 쉽지만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랫동안 나를 '즉시' 행복하게 해주는 일들에 집착해 왔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확증된 행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고행길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보험과도 같은 역할을 하니까.
하지만 나를 (수상하리만큼) '즉시' 행복하게 해주는 일들이란 대개,
지속력이 짧거나
행복보다 더 큰 크기의 부작용을 수반하거나
둘 다
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술을 좋아한다.
20대 중반까지는 '맥주를 참 좋아한다'는 말로 적당히 때울 수 있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맥주고 뭐고 간에 '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내가 여태 만나본 사람들을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술을 못 마시는 사람
술을 마시되, 많이 마시면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
술을 마시되, 많이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이 그것이다.
나는 3번에 속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술을 좋아하는데 술을 마시면 마실 수록 더 술을 찾게 되었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면 그 기분을 유지하고 싶어 지니까.
언제나 문제는 그다음 날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숙취가 심한 편이 아니다.
숙취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술을 마셔서 속이 안 좋다거나, 병이 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기본적으로 술을 많이 (늦게까지) 마시면 상대적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 피곤에 절어 다음날 다소간의 피로를 느낄 뿐이지
변기를 끌어안으며 술을 마시기로 한 과거의 나를 저주할 만큼 특별히 고생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할 일도 없었다.
문제는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발생했는데,
술을 제법 마시고 난 다음날이면 일상생활(특히 일)을 하는 데에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지장을 느꼈다.
해야 할 일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일은 어떻게든 해냈지만, 평상시에 비해 체감하는 난이도나 피로감이 상당히 달랐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근무시간을 힘겹게 버티고도 1시간 30분 이상의 퇴근길을 거친 후에 씻고 침대에 눕기까지 오랜 시간을 고통스러워해야 했다.
나는 내게 맡겨진 일을 잘 해낼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떨어진 컨디션과 떨어진 실적을 견디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마실 때는 좋고, 즐길 때는 좋지만
그 이튿날 찾아오는 피로와 무기력을 이겨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런 정신적 피로감은 신체의 피로감과 달리 쉽게 떨쳐내기 어려워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술자리를 위해 투자한 의미 모를 시간과 체력과 돈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자책해야 했다.
지금도 나는 술을 좋아하고 술자리를 좋아한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더 이상 내가 '필요 없는' 술자리에는 나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여도 술, 술, 술보다는 기타 음료(ex. 커피)가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우리 중 누군가가 한날한시에 마음을 먹고 '이제부터는 술 대신 다른 걸 즐기자'라고 결의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모두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만큼, 가까운 쾌락을 즐기고 났을 때 두 번째로 가깝게 찾아올 자괴감과 피로와 노동이 더 무겁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몸소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결과만이 중요하고 결과만이 인정받는 삶을 원한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지난 인생이 준 빅테이터를 통해 '이렇게 가면 파국뿐이야'라는 판정을 받은 행동은 가급적 지양하고 싶다.
고통받는 내가 빤히 보이는 선택지를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다시 고르고 싶지는 않은 거다.
스스로에게 그 정도의 학습능력은 있다 믿고 싶고, 그렇게 자제한 시간만큼 필요할 때에 더 마음 편히 즐기고 싶어 졌을 뿐이다.
과정도 결과도 중요하다.
하지만 숙취에 고생하는 나의 모습만큼이나 이변 없이 뻔한 결과라면, 시작 자체를 고사하는 지혜도 때로는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