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왔고, 직접 가르치지는 않더라도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참 많이도 보아왔다.
그 과정에서 내가 매번 놀랍다 느끼는 점이 두 가지 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려 하지만, 사실 그중 대부분은 영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점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이유를 (아직도) 미국' 혹은 '미국인'과 연관 지어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한국에서만 살 건데 대체 영어를 왜 배워야 해요?????' 라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가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미국(인)과 별로 상관이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단순히 미국에 가거나 미국인과 대화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다.
(물론 영어를 하다 보면 미국에 가거나 미국인과 대화할 일이 생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일 뿐......)
내 경험상, 언어학자나 영어교사, 통번역가가 되려는 게 아닌 이상 영어는 학문이라기보다 오히려 '기술'에 가깝다.
기술이라는 말이 너무 본격적이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기능' 정도로 생각해도 좋다. 요리나 운전처럼, 사는 데에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있으면 삶이 더 편리해지는 그런 기능. 내게 필요 없는 기능이라면 굳이 장착할 필요가 없다.
또한 간과하면 안 되는 사실이,
(이름이나 직업, 취미를 묻는 정도의 초급 수준으로 만족할 게 아니라면)
하나의 언어를 제법 쓸만한 수준까지 익힌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예로 든 운전은 배우면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운전대에 앉아 차를 몰 수 있지만, 언어는 그렇지가 않다.
여기에 대해 논하자면 논문을 써도 모자랄 거라 각설하고,
좌우지간 '어지간한 각오로' 영어를 배우겠다고 뛰어드는 것은 별로 추천할 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어를 구사하고 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꾸준히 갈고닦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내 학창 시절만 하더라도,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길을 가다 외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면 모두가 뒤를 돌아 한번쯤 빤히 쳐다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길 정도로, '외국인'이라는 존재는 차라리 '외계인'에 더 가까울 만큼 이례적이고 낯설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길을 걷다 보면, 외국인보다 그 외국인을 보고 신기하다고 쳐다보는 사람이 더 신기한 시대가 되었다.
연휴가 살짝 묻은 주말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평이나 부산을 가는 것처럼 가볍게 비행기에 올라 세계 각국을 누빈다.
멀리 갈 것 없이 방구석에 앉아 SNS에만 접속해도,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국경 없이 서로의 컨텐츠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단다.
옆 자리에 앉은 직원이 외국인일 수도 있고, 새 클라이언트나 거래처, 타겟층이 외국인인 경우는 그야말로 부지기수이다.
우리는 전 세계를 상대로 소통하고, 여행하고, 컨텐츠를 공유하고, 물건을 사고팔고, 교제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육체가 대한민국에 못 박혀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 싫다고 거스를 수 있는 흐름도 아니다.
이런 수준의 접점이 있다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 '언어'문제일 텐데,
언제 어디에서 어떤 사람과 마주치게 될지 모르는 이 시대상황과는 별개로, 세상에는 여전히 아주 많은 언어들이 존재한다.
한국어와 같은 소수어를 상대방이 알고 있을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하니 상대방의 언어를 알아야 소통이 가능할 텐데,
그때마다 상대방의 언어 하나하나를 익힌다는 것은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나를 위해 우리말을 익혀줄까? 그럴 리가.
그럴 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세계공용어'이다.
여러 대안언어들이 언급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영어는 세계공용어의 대우를 받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영어를 구사하고 있고,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소통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 왔을 때 영어를 쓰라는 암묵적인 권유가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언어를 익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미 한참 전에 그 업계(?)에 발을 들인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언어를 그때그때 다 익히는 것이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는 판단 정도는 한다.
이 언어 저 언어 다 기웃거려도 결국 내게 가장 활용도가 높은 건 '영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거다.
소통의 용이성을 떠나,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의 정보들이 '영어'로 쓰이고 공유되고 있다는 점 역시 영어를 등한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네이버라는 강력한 검색포탈이 20년 넘게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찍부터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정보 및 컨텐츠들을 모국어로 작성해 쌓아 둔 다소 희귀한 케이스에 해당된다. 검색이 용이한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데다 한국어로 되어 있기까지 한 정보들이 쉴 새 없이 쌓이고 있다. 이 글이 올라가는 브런치며 블로그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영어로 검색을 한다'는 개념이 그다지 일반적이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사건/사고, 발견, 발명과, 관련된 정보, 컨텐츠들이 영어로 제작되고, 영어로 가장 먼저 번역되어 퍼지고 있다. 우리 나라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이상,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영어로 쓰여 왔고 지금도 영어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모든 영역에서 세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면야 자국에서 생산되는 정보만으로도 큰 결핍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국 우리가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익히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어를 구사할 때, 사는 세상의 경계가 넓어지면서 훨씬 더 많은 기회에 가 닿을 수 있다는 점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그것이 정보든, 인맥이든, 고객이든, 일자리든, 연인이든, 오랫동안 눈독 들여온 한정판 아이템이든 간에)이 마침 우리나라에 있고 재고까지 남아있을 확률은 대단히 드물다.
반면에 그 수색 범위를 전 세계로 넓혔을 때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두가 힘들었던 코로나 시절, 나와 나의 팀원들이 해외 시장의 새로운 수요를 발굴하고 직접 컨택해 새롭게 거래를 트면서 회사의 위기를 넘겼을 뿐 아니라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도 더 큰 성과를 냈던 것 역시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다)
아직도 내 주위에는
"저는 미국 여행도 안 갈 거고 미국인도 안 만날 건데 대체 영어 배워서 어디다 써요????"
라며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학생들의 경우, 선택권 없이 강제로 배우기 때문에 성토의 강도가 훨씬 높다.)
내 답은 늘 같다.
"안타깝게도 영어는 미국 여행 가려고 배우는 것도 아니고 미국인 만나려고 배우는 것도 아니야."
"????????"
영어를 배워서 대체 어디다 쓰는지
영어와 미국, 영어와 미국인이 관점에 따라 서로 얼마나 상관이 없어질 수 있는지
영어 하나 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흥미진진해졌는지
한달음에 모두 다 꺼내어 설명하기란 어렵겠지만,
당신이 아직도 영어가 사는 집 대문 앞을 기웃거리고 있다면,
미국에 가지도 않을 거고 미국인을 만날 일도 없지만 그래도 영어가 신경 쓰인다면,
나는 몇 번이고 버선발로 뛰어 나가 권하고 싶다.
영어 하세요.
영어 하면 신세계가 열려요.
p.s.
같은 맥락에서,
아직도 '미국 원어민 발음'이나 '미국 억양' (자매품:영국 억양) 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이 만나 영어로 대화를 나누게 될 외국인이 '하필이면' 미국 출신일 확률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라 권하고 싶다.
(참고로 미국 인구는 3억 4200만이 살짝 안 되고, 세계 인구는 이미 80억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