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 가능성을 믿는 일
[서평] 어린이라는 세계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가까이에서 접할 기회가 많았다.
대학시절부터 영어나 수학 강사 일을, 때로는 아르바이트 삼아 때로는 전업 삼아 틈틈이 해왔기 때문이다.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일은 여러 면에서 특이하고 또 특별하다.
아주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가르치는 일을 단순히 하나의 직업으로 바라보았을 때,
'선생님'인 나는 나의 '고용주'나 다름없는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회사생활을 거치며 고용주(갑)-고용인(을)이라는 수직적인 관계에만 익숙해져있는 나에게 이것은 어딘가 단단히 전복된, 참으로 독특한 역학관계처럼 느껴진다.
성인이 되어 세상을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과 삶에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그것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된다. 그 당연한 명제가,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무심코 던지는 말 한 마디, 별 거 아닌 행동 하나에도 세상이 부서지고 새롭게 빚어진 것처럼 역동적으로 반응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어쩔 도리 없이 몹시도 두려운 마음이 든다.
나는 그들의 우주에 어떤 세계를 빚고 있을까?
내게 그들의 우주를 새로 빚을 자격이 있는 걸까?
학교를 졸업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그 별 거 아닌 한 마디를 이겨내기 위해 내가 견뎌야만 했던 순간들을 떠올릴 수록 더더욱 겁이 난다.
지금의 나는 그들의 우주에 어떤 세계를 빚고 있을까?
내게 그들의 우주를 새로 빚을 자격이 있는 걸까?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이들이 무심결에 뱉는 말, 태도를 통해
'이 아이들이 이대로 자라 이 세상의 주류를 이루게 되어도 괜찮을까?' 고민하는 순간.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타인과 그 가족을 욕하고, 혐오를 표현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성악설을 믿지 않는 내 자신을 의심하고 염려하게 되는 순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란, 곧 가능성을 믿는 일이라고 말하던 한 초등학교 교사를 떠올린다.
이미 틀린 것 같아도, 더이상 안 될 것 같아도, 한 번 더 믿고 기대하는 일.
포기하지 않음으로서 마음을 지키는 일을 다시금 포기하는 일.
사회가 아이들을 환대하고,
환대 받은 아이들이 자라나 환대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을 생각한다.
옆 테이블에 앉은 아이가 울고 떼를 써도,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비행내내 칭얼거려도,
온 마을이 마음을 다해 아이를 키워내던 시절을 떠올린다.
수많은 어른들의 환대로 자라난 나를 떠올린다.
타고난 재판관인 아이들에게 도리어 배우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