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과연 회복될지 의문입니다
고백하자면 나이트 킵 근무를 시작한 4월 1일 이후로 건강이 작살났다. 야간 근무를 전담하게 되면서 내가 얻은 건 피폐해진 수면의 질, 심각한 소화불량, 저하된 컨디션, 심각한 스트레스다. 20여 년 간 살면서 건강 하나만큼은 자부할 수 있었는데 지금처럼 이렇게 건강이 저하되었음을 느끼는 건 처음이다.
제일 큰 문제는 수면이다. 한 번도 제대로 잔 적이 없다. 직설적이게 표현하자면 수면 패턴이 망한 정도가 아니라 작살이 났다. 야간 근무 이후 아침 8시 30분 정도에 집에 들어오면 9시, 심하면 9시 30분까지 뒤척이다가 겨우 잠든다. 잠든다고 해서 푹 자는가. 그건 또 아니다. 11시 30분, 2시, 4시 즈음에 순서대로 깬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니 매번 피곤하다.
근무를 하는 날에는 새벽을 살지만, 쉬는 날에는 아침을 산다. 쉬는 날에는 새벽 5~6시에 깬다. 원체 아침형 인간이라 그런지 몸이 알아서 그렇게 살더라. 일어나면 머리가 아프고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할 일이 없으니 책을 읽거나 다이어리를 쓴다. 그러다가 두통이 너무 심하거나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다, 하고 느끼게 되면 조금 더 잔다. 다시 자게 되면 오후 12시, 2시에 한 번씩 깬다. 이런 삶을 살다 보니 6시간 이상 푹 자는 게 소원이 됐다.
두 번째로 소화불량이 너무 심하다. 뭘 먹어도 소화를 제대로 시키지 못한다. 나이트 근무하면서 야식으로 먹은 라면은 그 다음날 오후 2시에 가슴 통증으로 돌아온다. 안 먹으면 배가 고파서 일을 못 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소화불량의 일환으로, 아무리 양치를 해도 목구멍 바로 앞쪽에서 자꾸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만 먹어도 헛배가 부르다. 소화를 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니 음식을 먹기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로제 떡볶이를 정말로 먹고 싶은데 무서워서 먹질 못하겠다-진짜 비참하다-. 카페인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먹었다가 식도에 구멍이 날까 봐 두렵다.
세 번째로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다. 두통은 기본이고 아무리 스트레칭을 해도 목과 어깨가 풀리지 않는다. 그나마 두통은 다시 자고 일어나면 나아진다지만 근육들은 도저히 풀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목과 어깨 말고도 정말 풀리지 않는 근육 중 하나가 종아리인데, 일을 하면서 압박스타킹을 신어도 종아리에 심하게 쥐가 난다. 특히 이건 생리 때 정말 심했다. 딴딴해진 종아리가 아무리 스트레칭을 해도 풀리지 않고, 쥐가 나서 잠에서 깨기도 한다. 그렇게 잠에서 깰 때마다 도대체 내가 뭐하며 살고 있나 싶다.
컨디션이 정말 나빠졌구나,라고 느낀 사건 중 하나는 블랙아웃을 느끼면서였다. 일을 하면서 워낙 화나는 순간도 많고, 틀어지는 골반과 굽어가는 어깨를 보며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내 생각보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나에게 더 찰떡이었다. 무게를 드는 그 순간은 온전히 무게와 자세에만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뇌가 비워지는 느낌이 나서 좋았다. 또, 나 스스로 무게를 나쁘지 않게 드는 편이라 뿌듯함까지 더해져 웨이트 트레이닝을 사랑하게 됐다.
그런데 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다가 블랙아웃이 왔다. 처음 맞은 블랙아웃은 날카롭게 찾아왔다. 다행히 기구를 정리한 상태였기에 부상은 없었다. 다만,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놀랐다. 첫째로, 살면서 겪어본 적 없던 블랙아웃이 내가 좋아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다가 와서 놀랐다. 둘째로, 내가 블랙아웃을 겪을 정도로 컨디션이 이렇게 좋지 않았다는 걸 느껴 놀랐다. 평소에 들던 무게의 반도 들지 않은 상태였는데.
게다가 이 블랙아웃은 정도가 심했다. 현기증이 너무 심했다. 기어가듯 벤치에 앉아 5분 가까이 쉬며 보냈는데도 여전히 세상이 푸른빛이었다. 파란색 셀로판지를 덧댄 안경을 써도 이것보단 덜 푸르게 보일 것 같았다. 한 번 청색으로 입혀진 세상은 아무리 눈을 깜빡거려도 원래 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천천히 물을 마시고, 마스크를 벗은 채 호흡을 여러 번 하니 10분이 지나서야 느린 속도로 세상이 원래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느꼈다. 아, 내가 컨디션이 정말로 쓰레기긴 하구나.
네 번째로 스트레스에 지나치게 취약해졌다.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해야 하니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일하는 게 유난히 힘들다. 가족들이나 친구의 연락이 너무, 너무 받기 싫어서 의도적으로 무시할 때도 있다.
스트레스와 함께 허무와 불안도 지나치게 커졌다. 내 삶을 병원에만 바치고 싶지 않고 나 개인의 삶을 살고 싶어 여러 방면으로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나 스스로 내 노력을 자꾸 폄하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네 삶이 더 나아지는 게 있어? 어차피 못하는 걸 계속해봤자 답 없지 않나?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부정적인 생각들은 결국 내가 뒤쳐진 인생을 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과 존재 이유에 대한 허무로 종결된다.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 부정적인 감정에 빠진 하루가 완성된다.
이상이 내가 생각한 야간 근무가 인간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다. 적어도 나는 이렇게 느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머리가 정말 아프고 자꾸 목구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것 같다. 이 정도면 나도 입원해서 현기증으로 진단명 받아놓은 다음 수액 맞고 신경계 검사를 좀 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그렇게 해서 출근을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고 싶다.
나를 참 객관적으로 봐주는 내 대학 동기가 했던 말이 있다. "너는 간호사 하면 나이트를 제일 힘들어할 것 같아. 너 밤새는 거 진짜 못하잖아."라고 그 애는 자주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이트가 힘들면 뭐 얼마나 힘들겠어, 했는데 나이트 전담 근무를 하는 지금 정말로 힘들다. 그 동기를 붙잡고 말하고 싶다. 네 말이 다 맞으니까 나 나이트 킵 근무 말고 3교대 시켜줘. 차라리 3교대 할래...... 제발.
그래도, 나와 정말 안 맞는 이 나이트 킵 근무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세상만사 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따지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레떼아모르의 Reality라는 노래도 나이트 킵 근무를 하면서 야식을 먹다가 찾았다. 나이트 킵 근무가 아니었으면 그 노래를 찾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내가 정말로 야간 근무가 맞지 않는 아침형 인간임을 깨달았다. 앞으로 이직할 때 나이트 킵을 구한다는 글이 있으면 믿고 거르면 된다. 또, 나이트 킵 근무를 하는 덕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볼 일이 없는데 그건 정말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야간 근무를 하는 사람들의 힘듦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만약 나중에 지금의 나처럼 야간 근무를 전담으로 하게 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의 이야기에 누구보다 공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유튜버 채널 중 하나인 지기TV의 운영자, 지기가 말했다. 역경은 정말 힘들지만, 잘 버티고 나면 그게 경력이 된다고. 그리고 모든 일에는 끝이 있듯 내 야간 근무도 5월 31일을 끝으로 종료된다. 오늘을 기준으로 28일 남은 셈이다. 쉬는 날을 포함해서 28일이 남은 거니까, 실상 나가는 날은 16~17일 정도 될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정말 고지가 눈앞이기에.
나이트 킵 근무가 끝나는 6월은 푹 쉴 생각이다. 몸을 갈아넣어 만들어 나온 월급과 퇴직금, 연차 수당까지 알차게 챙겨서 여행을 떠나던 집에서 신선 놀이를 하던 회복에 전념하고 싶다. 망해버린 수면 패턴을 돌리고, 레이어스 클래식의 전국투어 공연 예매를 꼭 성공해서 귀호강 하러 가야지.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미래를 생각하다 보면 야간 근무도 금방 지나가 있을 거다.
그러므로― 비록 만신창이인 신체와 정신 건강이지만, 힘내자 나 자신.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