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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젤 May 05. 2022

어린이와 어른의 간격

5월은 푸르구나, 아가들은 자란다

 나에게는 그저 출근하는 날일 뿐인 5월 5일. 국가적으로 공휴일로 정해진 이날은 '어린이날'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어린이날은 미래 주역이 될 어린이들이 밝고, 씩씩하고, 건강하고, 예쁜 마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제정한 날이다.


 비록 야간근무를 하고 오후 4시에 느지막이 일어나 어린이날과 백만 광년은 떨어져 있는 나지만, 잠깐 주전부리들을 사러 편의점에 나갔을 때 어린이날과 꼭 어울리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볼 수 있었다. 예쁜 옷을 입고 햇살 같은 웃음을 짓는 아가들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마침 아가들의 뒤에 비치는 햇빛 덕분인지 더욱 아가들이 화사해 보였다. 저들끼리 재잘재잘 웃으며 길을 걷는 모습은 나조차도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다지 어린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전공 실습 때 모성간호학과 더불어 아동간호학 실습이 가장 싫었다. 아이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건 좋지만 굳이 엮이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랄까. 아이들은 가만히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 천사 같다는 게 것이 내 지론이다. 훗날 결혼해서도 굳이 아이를 낳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이 말을 들은 우리 엄마는 기함을 하긴 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최근의 트렌드가 하나 있는데, 바로 '노키즈존(No-Kids Zone)'이다.


 내가 노키즈존이란 단어와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아마 제주도 여행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던 2020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제주도에 예쁜 카페가 어디 있으려나, 한참 찾아보던 중 카페 인스타그램 소개 창에 '노키즈존'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신기했던 건 노키즈존이라는 단어가 한 군데도 아니고, 생각보다 여러 군데에 적혀 있었다는 거다. 굳이 뜻은 찾아보지 않아도 한 번에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애들은 없는, 애들은 받지 않는 공간이라는 거잖아.


 노키즈존을 주장하는 가게가 한 둘만 있었다면 '그 사장님이 애들을 싫어하나 보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키즈존으로 운영하는 가게가 여럿이라면 그건 개인의 선호가 아니라 하나의 트렌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행동에는 이유 없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노키즈존이 주류가 된 것에는 분명히 어떤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왜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등장하지 않았던 노키즈존이 등장하는가? 나 나름대로 열심히 이유를 생각해 봤다.


 첫째로 일단 어린이들의 에너제틱(Energetic)한 면모 때문일 것이다. 육아를 하면서 많은 부모들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에너지를 절대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성인처럼 아침에 골골거리며 커피를 마실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아가들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이미 풀-파워-배터리로 충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가들은 눈을 뜬 오전 6시부터 잠에 들기 전까지인 오후 8시까지 놀아도 지치지 않는다. 당장 출근하기에 체력이 딸려 골골거리는 성인으로써 그 체력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둘째로 아이들의 천재적인 두뇌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들의 뇌는 너무나 기발하고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 그 애들은 세상 모든 걸 제 손에 쥐어보고 싶어 하고 경험해보고 싶어 한다. 딱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마음 정도면 좋은데, 아가들은 그네들의 창의력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와 유연성 또한 있다는 게 문제다. 그 결과는 부모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이어진다. 나만 해도 7살 때인가, 그네를 타다가 여기서 떨어지면 안 다칠까? 가 궁금해서 뛰어내린 적이 있다. 다행히 모래 바닥에 심하게 처박혔을 뿐 다치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무슨 생각으로 그랬나 싶다.


 이상이 내가 생각한 노키즈존의 등장 이유다. 아마 여기서 첫째, 둘째, 혹은 이 두 가지 이유가 함께 나타나며 사회에 노키즈존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래, 이해는 한다. 음식점에 갔는데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가들을 보면 나도 진짜 한 대 쥐어박고 싶다.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하나도 관심 없는 자기 얘기를 주르륵 늘어놓는 아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색은 않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되짚어보면, 나 역시도 그러지 않았던가.


 내 어린 시절도 딱 그랬다. 나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삐약삐약 병아리, 로 시작하는 동물 농장 노래를 줄기차게 불러대던 시끄러운 어린이였고 놀이터에서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던 말괄량이였다. 엄마 말을 듣지 않은 채 자기 마음대로 뛰쳐나갔다가 경찰 아저씨의 손에 붙잡혀 부모님을 만나게 된 말썽쟁이였고 시장에서 원하는 걸 사주지 않는다고 떼쓰던 철부지였다. 아마 내가 지금 어린이였다면 <금쪽같은 내 새끼>에 출연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던 어린아이가 이렇게 커서 하나의 글을 쓸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때의 나를 참아준 어른들 덕분이었다. 내가 마트에서 떼를 쓸 때 단호하게 대처하는 부모님에게 별 얘기를 하지 않던 어른들, 부모님과 내가 같이 음식점에 갔을 때 나를 내쫓지 않던 매장 직원들, 엘리베이터에서 노래를 부르던 어린아이에게 시끄럽다고 화를 내지 않던 아파트 주민들. 어린아이가 부모님 없이 혼자 거리를 활보할 때 그냥 지나치지 않던 시민들 등.


 물론 내가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신 건 내 부모님이라는 것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어른이 되는 데에는 우리 부모님 말고도 다른 어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분들의 인내와 배려가 있었기에 어린이는 이렇게 어른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노키즈존의 존재가 조금 슬프다. 다른 어른들의 배려를 먹어야지만 성장할 수 있는 과거의 나 같은 어린이들의 발전을 막는 것 같아서. 미성숙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에게 어른 수준의 성숙함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덜 사회화가 된 아이들에게 높은 수준의 사회성을 요구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또, 정작 어른들의 배려를 먹고 자란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배려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동간호학에서 배운 이론 중 하나인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8단계를 살펴보면, 이중 절반이 어린이 시절(0세~12세)에 해당한다. 12~18세를 청소년,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본다면 어른에게 해당되는 발달 단계는 고작 2개뿐이다. 즉 어른에 비해 어린이들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부모들이 '애들이 너무 빨리 큰다'라고 말하는 게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변화의 가능성이 더 무궁무진하다는 거다. 어제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길바닥에서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가 오늘은 분노를 조절할 수도 있다. 식기 쥐는 법을 몰라 음식을 온통 떨어뜨리며 먹던 아이가 훈육으로 숟가락을 쥐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나도 육아를 해 본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만은, 어쨌건 아이들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 시간을 어른들이 조금만 참아주기만 한다면.


 헬린이, 요린이, 등린이 등. 근래 들어 '저는 초보자입니다' 나타내는 단어로 '어린이'가 애용되곤 한다. 21세기 들어 어린이들이 이렇게 많이 등장한 때가 없었다. 하지만 어린이라는 단어를 통해 어른 자신의 미숙함은 맘껏 어필하면서, 정작 그 단어의 주인공들이 미숙한 행동을 보일 때면 노키즈존을 들이밀며 눈살을 찌푸리는 실태라니. 파렴치한도 이런 파렴치한이 없지 않은가.


 2022년이 되며 어린이날도 10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어린이들에 대한 존중은 과연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어린이들 덕분에 공휴일을 취하게 된 어른으로서, 누군가의 배려를 통해 성장한 과거 어린이로서 좀 더 아이들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5월은 푸르고 아이들은 자랄 것이다. 이 5월의 푸른 기운만큼 세상의 모든 아가들이 더 행복하게, 웃으며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다.


 3시간 남은 어린이날이지만 행복하렴, 얘들아. 불쌍한 직장인은 출근이나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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