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쉬고 병동에 출근했다. 오늘 내가 돌봐야 하는 환자는 12명이었다. 국회에서 간호사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때깔 번지르르한 소리를 하면 뭐하나. 그래 봤자 내가 봐야 할 환자 수는 12명이고 간호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데.
이쯤 되면 병원장님이나 보건복지부 장관님께 뭘 믿고 신규 간호사에게 환자 12명을 맡기냐고 물어보고 싶은 정도다. 하지만 어쨌든 돈은 벌어야 하는 게 직장인의 삶이기에, 나는 EMR에서 환자 이름을 클릭해 인계장을 읽기 시작했다. 간호 일을 하려면 이 환자가 왜 병원에 왔는지, 지금 어디까지 치료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게 필수기 때문이다.
한 분 한 분, 천천히 인계장을 읽으며 환자를 파악했다. 그러다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최근 2주 동안 내가 계속 간호했던 할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이 할아버지 또 분명 대변을 못 봐서 힘들어하시겠지, 뭐. 별생각 없이 환자의 이름을 클릭해 인계사항을 보려던 찰나, 믿을 수 없는 팝업창이 하나 떴다.
"OOO 님은 9월 17일 새벽 1시에 사망하셨습니다."
시계를 봤다. 오전 5시 30분이었다. 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왜?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당황한 나는 인계장을 채 읽다 말고 할아버지가 쓰시던 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나이트 근무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고, 이제 막 처음으로 환자를 보러 카트를 끌고 출발했을 때였다. 나이트 근무자 선생님께서 정말 피곤한 얼굴을 하신 채 다가오시더니 말했다.
"선생님, OO호 OOO 님도 방금 사망하셨어요. 인턴이 EKG 찍었더니 flat(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아 심전도가 일자로 뜨는 것) 확인됐고, 방금 전공의랑 다 불러서 사망 선언까지 했어요. 사망진단서 10부 신청하셔서 원무과에 전화해 뒀고, 저희 병원 영안실까지 안내드렸으니 자리만 잘 치워주세요."
갑자기 눈 깜빡할 사이에 두 분이 돌아가셨다. 저승사자가 잠깐 병동에 들렀다 가기라도 한 걸까.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일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신규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상황을 파악하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다른 환자분들을 간호하는 것이다.
새벽 1시에 사망하신 할아버지가 쓰시던 방에 들어가 아직 그 방을 사용하시는 다른 환자를 돌봤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 환자분과 얘기할 때쯤이면, 저 옆쪽에서 할아버지가 보호자인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 등이 들려야 하는데. 창가 자리에 익숙한 갈색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으니 참 어색했다. 익숙한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헛헛했다.
카트를 끌고 다른 방으로 갔다. 새벽 6시 30분에 사망하신, 그러니까 내가 출근하고 인수인계를 받은 직후에 사망하신 그 할아버지가 있는 방 쪽이었다.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던 간병인은 눈시울을 빨갛게 붉힌 채 할아버지의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애써 그쪽을 보지 않은 채 다른 환자들을 돌봤다. 항생제 투여, 혈압 측정 등. 나에겐 할 일이 많았다.
유족분들께서 애도의 시간을 가지고, 나 또한 어느 정도 할 일이 끝난 오전 8시 무렵.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새벽 6시 30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얼굴을 뵐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참 고요했다. 살아생전 이분이 자주 착용하셨다는 검은색의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모습이셨다. 지그시 눈을 감으신 그 모습이 참 어색했다. OOO님, 하고 조용히 이름을 불러봐도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괜스레 울컥했다. 이 분은 내게 참 여러 의미를 가지신 분이었다. 이 병동에서 일한 후 내 모든 처음의 순간들이 이 분께 있었다. 이 분께 간호사로서 처음으로 흡인(suction)을 했고, 수혈을 했고, 정맥주사를 성공했다.
최근만 해도 점점 본인의 상태가 안 좋아지시는 걸 느끼셨는지, 할아버지는 종종 내게 손을 잡아달라고 할 때도 있었다. 잠에 취한 듯한, 또렷하지 않은 정신 상태로 끙끙거리시며 손을 잡아달라 하시던 목소리. 그럴 때 손을 꼭 잡아드리면 암성 통증으로 힘들어하시던 얼굴에 잠깐이나마 희미한 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던 기억이 생생한데.
내 기억은 이렇게 아직도 살아 있는데,
정작 내 기억의 대상자는 영원의 너머로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내가 이렇게 환자의 이름을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는 게, 나를 얼마나 슬프게 하는지.
장례식장 직원이 찾아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갈 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할아버지의 영혼을 위한 작은 기도뿐이었다.
할아버지가 쓰셨던 병실을 치우며 내내 기도했다. 부디 그 영혼이 행복한 곳으로 가셨기를. 새벽 1시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6시 30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모두, 부디 그곳에서는 행복만 누리시기를. 슬픔이나 아픔 따위 다 잊어버리시고 오로지 즐거움만 가득하시기를.
두 할아버지들이 떠난 자리는 기가 막히게 다른 환자들로 채워졌다. 대장에 문제가 있어 응급 수술을 하고 올라온 환자 한 명이 한 자리를 차지했고, 응급 제왕절개를 한 산모 한 명이 또 다른 자리를 차지했다. 누군가 죽은 자리에 누군가 살기 위해 온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렇기에 아마 나는 며칠만 지나도 할아버지들의 부재를 새까맣게 잊을지도 모른다. 그 자리를 차지한 다른 환자들을 어떻게 간호해야 할지 머리 터지게 고민하느라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