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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젤 Sep 17. 2022

Long live the patient

그곳에서는 아픔 없이 행복하시기를 바라며

 하루 쉬고 병동에 출근했다. 오늘 내가 돌봐야 하는 환자는 12명이었다. 국회에서 간호사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때깔 번지르르한 소리를 하면 뭐하나. 그래 봤자 내가 봐야 할 환자 수는 12명이고 간호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데.


 이쯤 되면 병원장님이나 보건복지부 장관님께 뭘 믿고 신규 간호사에게 환자 12명을 맡기냐고 물어보고 싶은 정도다. 하지만 어쨌든 돈은 벌어야 하는 게 직장인의 삶이기에, 나는 EMR에서 환자 이름을 클릭해 인계장을 읽기 시작했다. 간호 일을 하려면 이 환자가 왜 병원에 왔는지, 지금 어디까지 치료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게 필수기 때문이다.


 한 분 한 분, 천천히 인계장을 읽으며 환자를 파악했다. 그러다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최근 2주 동안 내가 계속 간호했던 할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이 할아버지 또 분명 대변을 못 봐서 힘들어하시겠지, 뭐. 별생각 없이 환자의 이름을 클릭해 인계사항을 보려던 찰나, 믿을 수 없는 팝업창이 하나 떴다.


 "OOO 님은 9월 17일 새벽 1시에 사망하셨습니다."


 시계를 봤다. 오전 5시 30분이었다. 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왜?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당황한 나는 인계장을 채 읽다 말고 할아버지가 쓰시던 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나이트 근무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고, 이제 막 처음으로 환자를 보러 카트를 끌고 출발했을 때였다. 나이트 근무자 선생님께서 정말 피곤한 얼굴을 하신 채 다가오시더니 말했다.


 "선생님, OO호 OOO 님도 방금 사망하셨어요. 인턴이 EKG 찍었더니 flat(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아 심전도가 일자로 뜨는 것) 확인됐고, 방금 전공의랑 다 불러서 사망 선언까지 했어요. 사망진단서 10부 신청하셔서 원무과에 전화해 뒀고, 저희 병원 영안실까지 안내드렸으니 자리만 잘 치워주세요."


 갑자기 눈 깜빡할 사이에 두 분이 돌아가셨다. 저승사자가 잠깐 병동에 들렀다 가기라도 한 걸까.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일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신규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상황을 파악하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다른 환자분들을 간호하는 것이다.


 새벽 1시에 사망하신 할아버지가 쓰시던 방에 들어가 아직 그 방을 사용하시는 다른 환자를 돌봤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 환자분과 얘기할 때쯤이면, 저 옆쪽에서 할아버지가 보호자인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 등이 들려야 하는데. 창가 자리에 익숙한 갈색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으니 참 어색했다. 익숙한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헛헛했다.


 카트를 끌고 다른 방으로 갔다. 새벽 6시 30분에 사망하신, 그러니까 내가 출근하고 인수인계를 받은 직후에 사망하신 그 할아버지가 있는 방 쪽이었다.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던 간병인은 눈시울을 빨갛게 붉힌 채 할아버지의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애써 그쪽을 보지 않은 채 다른 환자들을 돌봤다. 항생제 투여, 혈압 측정 등. 나에겐 할 일이 많았다.


 유족분들께서 애도의 시간을 가지고, 나 또한 어느 정도 할 일이 끝난 오전 8시 무렵.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새벽 6시 30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얼굴을 뵐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참 고요했다. 살아생전 이분이 자주 착용하셨다는 검은색의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모습이셨다. 지그시 눈을 감으신 그 모습이 참 어색했다. OOO님, 하고 조용히 이름을 불러봐도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괜스레 울컥했다. 이 분은 내게 참 여러 의미를 가지신 분이었다. 이 병동에서 일한 후 내 모든 처음의 순간들이 이 분께 있었다. 이 분께 간호사로서 처음으로 흡인(suction)을 했고, 수혈을 했고, 정맥주사를 성공했다.


 최근만 해도 점점 본인의 상태가 안 좋아지시는 걸 느끼셨는지, 할아버지는 종종 내게 손을 잡아달라고 할 때도 있었다. 잠에 취한 듯한, 또렷하지 않은 정신 상태로 끙끙거리시며 손을 잡아달라 하시던 목소리. 그럴 때 손을 꼭 잡아드리면 암성 통증으로 힘들어하시던 얼굴에 잠깐이나마 희미한 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던 기억이 생생한데.


 내 기억은 이렇게 아직도 살아 있는데,

 정작 내 기억의 대상자는 영원의 너머로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내가 이렇게 환자의 이름을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는 게, 나를 얼마나 슬프게 하는지.


 장례식장 직원이 찾아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갈 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할아버지의 영혼을 위한 작은 기도뿐이었다.


 할아버지가 쓰셨던 병실을 치우며 내내 기도했다. 부디 그 영혼이 행복한 곳으로 가셨기를. 새벽 1시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6시 30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모두, 부디 그곳에서는 행복만 누리시기를. 슬픔이나 아픔 따위 다 잊어버리시고 오로지 즐거움만 가득하시기를.


 두 할아버지들이 떠난 자리는 기가 막히게 다른 환자들로 채워졌다. 대장에 문제가 있어 응급 수술을 하고 올라온 환자 한 명이 한 자리를 차지했고, 응급 제왕절개를 한 산모 한 명이 또 다른 자리를 차지했다. 누군가 죽은 자리에 누군가 살기 위해 온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렇기에 아마 나는 며칠만 지나도 할아버지들의 부재를 새까맣게 잊을지도 모른다. 그 자리를 차지한 다른 환자들을 어떻게 간호해야 할지 머리 터지게 고민하느라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망각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두 분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Long live the patient,

 부디 천국에서는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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