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고아가 되던 날

by 최서희

어릴 적 동네에 엄마를 일찍 천국에 보낸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늘 함께 놀았고, 함께 웃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빈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하루는 동네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작은 사고를 일으켰다. 사고를 수습해 주신 동네 어른들은 우리를 한데 모아놓고 밥을 먹이며 타일렀다.

"너는 더 잘해야지, 너가 이러면 되겠어? 이거 먹고 다시는 그러지 마! 그래야 또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러지."

그 친구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보며,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언가가 어긋나 있었다.

늘 반찬을 만들어 가져다주고, 살뜰히 챙겨주던 삼촌과 이모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지는 사랑이 있었다. 그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가슴 속에 어떤 허기가 채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친구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우리는 그 침묵의 의미를 온전히 알지 못했다.

차라리 모두를 모아놓고 똑같이 혼을 내셨다면, 그날의 기억은 그저 한바탕 꾸중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몰려다니며 장난을 치고 사고를 치는 아이들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의 어른들은 우리에게 밥을 주었고, 그 친구에게만은 다른 말을 건넸다.

그 이후로 나는 한동안 그 친구에게 빚진 마음이었다.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놀다가도, 밥때가 되어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여나 그 친구가 내게서 '엄마'라는 존재를 보게 될까 봐, 운동장 저 끝에서 나를 찾으러 오는 엄마를 들킬까 봐, 조용히 숨죽이곤 했다.

어릴 적에는 거저 받은 것이 죄다 미안했다. 누군가에게는 없는 것을,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다. 엄마의 손을 잡는 것, 저녁상 앞에서 엄마와 마주 앉아 있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내 친구에게는 침묵 속의 과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의 침묵은 가장 강한 동의의 표현이 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양심도 점점 무뎌졌다. 이제는 작은 마음 하나도 제대로 잘라내지 못할 만큼, 별반 다를 것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제서야, 너무 늦어버린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이제서야, 고아가 되고서야, 그 친구가 느꼈을 공허함이 무엇인지...

고아가 되고서야, 이제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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