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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by 최서희

큰 학교에서의 새 학기는 그야말로 정글이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는 두세 명뿐이고, 그마저도 절친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운 선생님, 낯선 얼굴들, 익숙하지 않은 자리 배치—3월의 교실은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하는 전쟁터와도 같다.

오늘은 그 정글 같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여학생들의 관계 맺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만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비밀'에 대한 이야기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어디에 속할지를 탐색한다. 처음 며칠 동안은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곧 교실 안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싸가 누구인지, 나와 성향이 맞는 친구가 누구인지를 찾아 나선다. 주목받는 걸 즐기는 아이도 있고, 조용한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찾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자연스럽게 무리와 경계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인싸 그룹의 아이들은 그들만의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예쁘거나, 힙하거나, 리더십이 있거나, 유머러스하거나, 어떤 이유로든 인싸로 떠오르는 아이 주위로 또 다른 아이들이 모인다. 그리고 그들만의 '우리'를 만들어 간다. 함께 다니고, 같은 패션을 공유하고, 같은 장소에서 어울리고, 같은 아이템을 들고 다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들만의 '비밀'을 만든다.

그 비밀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들끼리만 아는 이야기, 공유하는 감정, 함께 나눈 주말의 추억, 특정한 주제에 대한 입장—이 모든 것이 비밀이 되어 그룹의 경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누구든 무리에 속하고 싶다면, 비밀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누구든 그룹에서 배제된다면, 그 비밀은 영원히 접근할 수 없는 벽이 된다.

어릴 적 나도 그런 무리에 속해 있었다. 네 명이 늘 함께 다니며 반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한 번은 학급 회의에서 '끼리끼리 놀지 말자'는 의견이 나왔고, 교실 안의 모든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하지만 그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왕따를 시키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과 싸우는 것도 아닌데, 그냥 친한 친구들끼리 어울릴 뿐인데, 그게 왜 문제가 되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몰랐다. 우리가 쌓아 올린 비밀들이 점점 성벽이 되어 가고 있었음을. 처음엔 우리끼리 나누는 작은 이야기였지만, 그것이 곧 우리만의 세계가 되어 버렸음을.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비밀은 우리를 가두는 틀이 되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특별함이 사라질까 봐, 성벽이 무너지면 우리가 흔한 존재가 될까 봐. 그래서 더욱 단단하게 비밀을 지키고, 성문을 걸어 잠갔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반 전체에서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비밀은 강력한 무기다.

전쟁이 아닌 일상을 전쟁처럼 만들고, 우리를 가두는 힘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왜 손 마른 자를 대중 앞에서 고쳐 주셨을까? 왜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의 위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셨을까? 왜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의 죄를 더 드러나게 하셨을까?

그 답은 하나다. 단 하나.

예수님은 빛이시고, 율법을 완성하시며, 죄를 지우시기 위해 오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죄인과 함께 있기 위해 오셨다.

돌을 든 무리가 돌을 내려놓은 이유는, 아무도 반박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떠난 이유는, 예수님이 비밀을 깨뜨리고, 죄를 드러내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돌을 들어 던지는 것이 아니라, 죄인과 함께 서는 것이다. 성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 그 문을 열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함께 손가락질당하고, 함께 돌 맞고, 함께 밥을 먹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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