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시간은 어쨌든 흘러간다.
'어쨌든'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묘하다. 문맥상 '무겁다'보다는 '중요하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도 있지만, 내게는 '어쨌든'이라는 단서가 붙는 순간, 시간의 흐름이 무겁다 못해 무섭게 느껴진다.
그래, 시간은 어쨌든 흘러간다. 내가 모든 것을 멈추고 '지금'에 머물러 있을 때도, 혹은 미친 듯이 '저기'를 향해 달려갈 때도, 시간은 흐른다. 내 삶과는 무관하게, 같은 속도와 같은 크기로 흐르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종종 잊곤 했다. 마치 내가 멈추면 시간도 함께 멈출 것처럼, 내가 다시 뛰기 시작하면 시간도 나를 따라 움직일 것처럼 착각했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도 무심해서 서운할 정도로, 내게는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평소 신뢰하던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다. 친구는 말했다.
"인간관계는 생각만큼 쌍방향이 아니더라. 내가 10개를 주면 상대도 10개를 주겠지? 그래, 2개쯤은 덜 주더라도 8개는 주겠지 싶었어. 그런데 상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더군. 맞아, 내가 10개를 주면 그 친구도 10개를 주지. 그런데 그 10개가 뭔지 아니? 내가 줬던 걸 고스란히 다시 돌려주는 거야."
부담. 친구는 그 단어를 애써 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너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 "주지 말던가, 아니면 받을 기대를 버리던가." "맞아. 나는 받을 기대를 버렸어. 그랬더니 정말 내 10개만 홀랑 받아 가더라.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어. 그 친구를 대하는 내 태도도, 그 친구가 나를 대하는 태도도 한결 가벼워졌지."
결국 선택의 문제였다. 주지 않을 것인가, 받을 욕심을 버릴 것인가. 그런데 두 가지 다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주지도, 받지도 않기로.
시간은 어쨌든 흐른다. 그 '어쨌든'이 무섭다. '어쨌든'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외면한다.
"그래, 네가 어쨌든 시간은 흐른다고 했지? 그런데 나는 왜 아직 여기 있는 거지? 그리고 내 모습은 또 왜 이 모양이지?" "나는 흐른다고만 했어. 네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는 말한 적 없잖아."
나는 그렇게 시간에 속아 스물아홉 해를 살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에게 속아 스물아홉 해를 흘려보냈다.
'잘하고 있어. 그래, 넌 역시 끝내줘.'
나는 시간을 잘 타고 있었다. 한 해는 친구들에게 묻혀, 한 해는 일에 묻혀, 또 한 해는 이상에, 또 한 해는 감정에 묻혀…… 그렇게 그때그때 시간을 끝내주게 잘 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지금, 나는 어디에도 없다. 시간은 내가 지나온 길을 기록하지 않는다. 심지어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보낸 스물아홉 해는 시간 속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직장? 그것은 시간이 만들어놓은 허상일 뿐. 그 안에는 내 꿈도, 비전도, 심지어 내 이름 석 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람? 그래, 내가 한 달 동안 고민했던 것. '적어도 사람 하나쯤은 건졌겠지.'
적어도…… 그러나 아니다. 시간은 내게 가차 없이 말한다.
'그래서?'라고.
'그래서 넌 지금 바닥이야. 네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야.'
모든 걸 접어볼까. 그리고 다시 바닥을 힘껏 차고 일어날까. 수면 위로 떠오르면 나는 다시 달릴 것이다. 이번에는 나를 위해, 내 비전과 꿈을 위해, 그리고 내 하나님을 위해. 시간은 여전히 흐를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만들어놓은 길 위를, 내가 만들어놓은 모습으로 흐를 것이다.
잠시, 모든 것을 접어볼까 한다. 지금과는 다른 나의 미래를 위해. 지금보다 더 단단한 나를 위해. 잠시, 모든 것을 접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