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잠 沈潛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물속 깊숙이 가라앉아 숨는다.

by 최서희

동네 작은 정신과 의원을 검색했다.

가까운 곳,

사람이 많지 않은 곳,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곳.

인터넷으로 무심하게 정한 병원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고요한 도로,

느릿하게 지나가는 건물들.

길기만 한 길, 길기만 한 시간들.


병원 앞에 도착해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겹겹이 쌓인 벽처럼 무거운 공기가 그득했다.

누군가의 시선도,

누군가의 말도

아무것도 닿지 않는 곳.


이름과 주민번호를 적고 접수를 했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검사지를 받았다.

첫 방문 환자에게 늘 그러하듯,

수십 개의 질문이 인쇄된 질문지였다.


질문들은 이상하리만치 간단했지만

단번에 고를 수 없었다.

"최근 2주 동안 식욕은 어땠습니까?"

"삶의 의욕이 없다고 느낀 적 있습니까?"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습니까?"


나는 기계처럼 체크했다.

생각은 없었다.

감정도 없었다.

그저 문장을 읽고

'매우 그렇다' 또는 '전혀 아니다'에

작대기를 그어댔다.

속이 빈 상자처럼 손가락 하나에도

몸이 들썩였다.


진료실에서는 짧고 간단한 대화가 이어졌다.

"잠을 못 주무신다고요?"

"네."

"무슨 생각이 자주 드세요?"

"모르겠어요. 그냥 깨어 있어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처방전을 적었다.

나는 그걸 받아 들고 나와

약국으로 갔다.


약봉투를 들고 돌아서보니

집 앞이었다.

오늘은 잘 수 있을까.


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새벽 네 시가 다 되어서야

눈꺼풀이 무거워졌고

잠들었는지

기절했는지

모른 채 눈을 떴다.

자고 일어났다는 감각이 없었다.

어젯밤을 통째로 이마에 이고

깨어 있었던 것만 같았다.


새벽 2시쯤,
거실 바닥에.
욕실 타일 위에.
마치 공벌레인 것마냥 몸을 접고 굴려 누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구석진 곳을 찾아 누웠다.
그러는 동안
살이 빠졌고
말수가 줄었고
사람을 피했다.

낯설었다.
낯선 하루가 이어졌다.
특히 견딜 수 없는 것은 소리였다.


혼자만 말하는 동료 앞에서,
전화기 너머 불평하는 엄마에게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내 몸 어딘가를 건드렸다.
소리를 의식하는 어느 순간

가슴 아래 어딘가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회의 중이었다.
사람들이 말을 하고,
단어가 단어를 밀어냈다.
귀가 울리고
내장이 멀미하는 것처럼 뒤틀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토하기 시작했다.
입가를 닦고 얼굴을 들면
내가 보였다.
이대로는 곧 일을 그만둬야할지도 모른다.


예약이 밀려 두 달 뒤에나 진료가 가능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취소되는 자리가 있다면,
언제든 괜찮습니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한 달 앞당겨진 일정이었다.

열지 않아도 열리는 문을 지나

빼곡한 의자와 사람들을 피해

대기실 밖 벽에 기대어 호명되기를 기다렸다.

종이 한 장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동안

잠을 잤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토하지만 않으면 괜찮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즈음 나에게

병원은 진단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증상이 흐려지는 공간.

조금 덜 괴로운 하루를

빌리는 곳이었다.

그것이면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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