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 無感覺

반응에도 무감각하다.

by 최서희


진료실 옆,

작은 검사실에 앉았다.

팔걸이가 낮은 의자,

창문 하나 없이 사방이 막혀있는 벽,


눈을 감으라고 했다.

가게 셧터를 내리 듯 눈꺼풀이 내려오는 순간

사방이 어두워졌다.


“지금부터 숫자를 불러드립니다.

삼십육 더하기 십오. 곱하기 이.

생각하지 말고 바로 대답하세요.

늦어요. 더 빨리요.

쉬지 말고 바로 대답하세요.”


목소리는 일정했고,

감정은 없었다.

계산기를 두드리듯 속으로 숫자를 움직였다.

생각이 아니라 반사였다.

소리에 대한 반사, 날아오는 공을 받아치듯이.


“다시 합니다.

빨리 하셔야 합니다.”


몇 번 반복되었는지 알 수 없다.

소리를 들었고, 숫자를 계산했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무슨 숫자였는지,

이어지는 질문에 지워져 기억나지 않았다.


의사는 결과가 적힌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한참을 말이 없었다.


“공황이 맞습니다.

공황은 대개 우울증의 시작입니다.

공황은 치료하면 나아집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토하는 것보다 더 문제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스트레스 자극에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데 환자분은 반응이 없어요.

그러니까 스트레스에 아무 반응이 없어요.

무감각해요."


그제야 검사실에서의 재촉하는 말이 의도된 것임을 알았다.

이상하다.

짜증이 났었다.

그때, 잠깐이었지만 짜증이 났던 것도 같은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도 같은데

꽤 열심히 대답했다.


아직은 전기가 돌고

불이 켜지기도 하는 것 같은데

오래전에 꺼져 버렸던 걸까.

아니면, 아직 꺼지고 있는 중일까.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참을 수가 없었다.환자분이라는 호칭이 낯설었다.집에 가고 싶었다.

도망치듯 서둘러 처방전을 뺏어 들고

자동으로 열리는 문을 지나

주차정산을 하고

자동차키를 연신 눌러대어 겨우 차에 탔다.

내가 입을 열지 않는 한

차 안은 조용했고,

말하는 것 대신 눈을 감았다.


새벽 세 시.

약 덕분인지 잠이 들었다.

거실로 나와

베란다 창가에 앉았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세상은 아직 검푸르고

도시는 아주 느리게 깨어나고 있었다.


출근 준비를 했다.

손을 씻고,

머리를 묶고,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고.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출근길에 올랐다.


출근길.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토하지만 않으면 된다.

아니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만 아니면 된다.

그럼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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