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이 나란히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마치 소풍을 가는 12마리의 돼지 형제처럼, 어찌나 발걸음이 가볍고 즐거운지 보는 사람까지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든다. 어디로 가는 걸까? 돼지들보다 먼저 앞선 내 시선이 순간 멍해졌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사육장이었다.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걸까?’
모든 생명은 죽음 앞에서 소극적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돼지들은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오히려 엉덩이를 씰룩이며 유쾌하게 죽음을 향해 걷고 있다.
‘어떻게 돼지들은 죽음을 앞두고도 저리 태연할 수 있을까?’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돼지들의 태도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내 그 존경심은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돼지들이 웃음 짓는 이유, 아니, 그들이 죽음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콩’ 때문이었다.
돼지들의 시선은 죄다 땅을 향해 있었다. 사육장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주인은 바구니에서 노르스름한 콩을 한 움큼씩 떨어뜨리고 있었고, 돼지들은 그것을 따라가며 열심히 먹고 있었다. 유혹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돼지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있었으니까. 죽음을 의미하는 사육장과, 눈앞의 달콤한 콩. 그들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콩을 선택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으나 육체로 마치었나니…….’
성경 속에는 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육체로 마친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많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만났던 아담과 하와조차 육체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쉽게 사탄의 시험에 흔들렸을까?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나는 그들보다 나은 존재가 아니기에 그들의 믿음이 부족했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사탄의 전략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을 뿐이다. 마치 콩을 쫓아가는 돼지들처럼, 사탄이 뿌려놓은 작은 유혹 앞에서 아무런 경계 없이 걸어갔던 것이다.
성령으로 시작했음에도 삶의 끝에서 다른 길을 걷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는 남의 것을 탐하다 감옥에 가고, 어떤 이는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는 삶을 산다. 이는 성령이 다르게 역사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탄의 시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사탄은 결코 부드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라고 했다. 사탄은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정확히 알고, 가장 감미로운 목소리와 탐나는 유혹으로 공격해 온다. 예수님조차 사탄의 시험을 받았는데, 하물며 우리가 어찌 방심할 수 있겠는가?
사탄은 전술가다. 우리의 나태한 순간을 파악하고 전략을 세운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공격해 온다. 쓰러질 때까지,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우리의 영적 생명이 끝나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승리해도 쉬지 않는다. 다시 전략을 세우고 새로운 전투를 준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강하게 사탄을 대적해야 한다. ‘대적한다’는 말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맞서 싸운다는 뜻이다. 내게 사탄의 시험은 곧 전쟁이다. 기도로 단련된 두껍고 강한 갑옷을 입고, 말씀으로 단단해진 창을 손에 쥐고, 나는 허둥지둥하는 병사가 아니라 멀리서 공격해오는 사탄을 기다리는 준비된 전사다.
나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달콤한지, 성령님의 보호하심이 얼마나 강한지 경험했다. 콩의 달콤함보다도 사육장의 끔찍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진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자이며, 사탄의 끝을 아는 자다.
그러니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상에서의 삶을 마칠 것이다. 나의 젊음과 열정을 다듬어, 사탄을 이겨낸 예수를 닮은 예수쟁이가 되리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해산의 고통으로 낳았으니 내가 너를 보호하리라.”
나는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깨어 있다. 언제 닥칠지 모를 사탄의 공격을 기쁨으로 기다린다. 사탄과의 전쟁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승리를 확신하기에, 전쟁은 내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전쟁을 치를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느끼고, 나의 믿음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때로 넘어질지라도, 그 넘어짐 속에서 나는 더 멀리 보는 눈을 얻고, 더 강한 팔과 단단한 다리를 만들 것이다.
사탄이 절망하지 않는다면, 나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