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by 최서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를 보고 나와 횡단보도 빨간불 아래 선다. 그렇게 잠시, 가만히 선다.

‘조제, 지금 이 길이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 좋겠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조제, 지금 이 길이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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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 벌써 두 번째 ‘쿵’하고 바닥으로 하강한다. 마치 지구 중력의 힘을 눈으로 증명이라도 하듯, 매번 의자에서 낙하하여 방바닥에 착지한다.

헝클어진 단발머리의 그녀는 막 요리를 끝내고 이내 자기 자리로 돌아가 책을 읽는다.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 될 자리. 오직 그녀만이 어울리는 자리에서 책을 읽는다. 어제와 같이, 그리고 다가올 내일도 변함없이...

나는 가만히 조제의 하루를 지켜본다. 특별할 것 없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녀는 무료하기 짝이 없다. 하루 한 번 할머니와 함께하는 새벽 산책이 그녀의 유일한 외출이자 세상 나들이이다. 할머니는 조제를 유모차에 태우고 햇빛가리개를 완전히 내린다. 조제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만, 세상은 조제를 알아보지 못한다. 햇빛가리개가 그녀의 얼굴을 완전히 가려버렸기 때문이겠지.

“조제, 햇빛가리개를 올리는 건 어때요? 세상이 당신을 볼 수 없잖아요.”

“아니, 세상이 나를 볼 수 없는 건 이 햇빛가리개 때문이 아니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야. 보려고 하지 않으니 당연히 보이지 않을 수밖에... ”

‘저 여자, 피해의식이 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장애를 가졌으니까, 장애인이 정상인에게 갖는 일종의 피해의식이야.’ 그런데 영화가 끝나갈 무렵, 피해의식은 그녀가 아니라 세상이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은 장애인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세상은 정상인만을 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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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조제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작 조제와 대면하게 되자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있다. 다섯 발짝 물러나는 것도 모자라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다. 가까워지는 것에 뭔지 모를 두려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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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천 명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예수를 부르짖고 있다. 나도 청년인데, 이 순간 묘한 열등감을 느낀다. 청년들의 기도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예수님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실까? 만약, 지금 누군가의 손을 잡고 계시다면 그 상대는 누구일까?’

‘저기, 방언으로 기도하는 형제일까? 저기 눈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매일까?’

이상하다. 나는 내가 던진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머리는 자꾸 열심히 기도하는 젊은이들이라 하는데, 가슴은 아니라고만 하는 것 같다.

‘아니, 아니야. 예수님은 찾고 계셔. 생활고에 시달리며 늦게까지 일하느라 예배 시간에 졸고 있는 젊은이를.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모은 손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젊은이를. 자신의 부족을 가슴에 담고 예수님을 원망하고 있을 가엾은 젊은이를. 예수님은 그런 젊은이의 손을 보고 계셔. 아까워 쉽게 잡지도 못하시고, 옆에서 울고만 계실 거야. 우리 예수님은 그런 분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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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저 여자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츠네오. 건강하고 참 잘생긴 대학생이다. 저 남학생도 나처럼 조제의 ‘쿵’하고 하강하는 모습에 깜짝 놀란다. 그는 조제와의 처음을 어떻게 시작할까? 혹시 나처럼 멀리 떨어져 관찰하진 않을까?

내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갇혀있는 동안, 저 남자는 밥을 먹고 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벌써 밥을 두 그릇째 쓱쓱 비우고 있다. 참 자연스럽다.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밥부터 먹고 볼걸. 그럼 더 가까이에서 조제, 저 여자를 볼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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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네오는 대학 캠퍼스에서 한 여자를 두고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는다. 가벼운 성적 농담으로 시작했던 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의 잠자리로 이어진다. 나는 이 두 대학생의 관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그 여자의 등장이 영화 속에서 겉돌고 있다고 느낀다. 도대체 왜 조제의 인생에 이토록 눈부신 몸매를 가진 여자가 등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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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네오는 문턱이 닳도록 조제를 찾아온다.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한다. 조제는 자신만의 공간에서조차 이 남자를 곁에 둔다. 책을 읽고, 말을 건다. 나는 아직도 유리벽 너머에 있는데, 저 남자는 조제와 자연스레 농담을 나눈다. 묘한 질투심이 생긴다. 견디다 못해 영화 속을 비집고 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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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온 후, 조제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늘 의지했던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츠네오와의 사랑은 쿨한 이별로 변해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조제의 태도였다. 단발머리에 여전히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는 이제 혼자 생선을 구워 먹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한다. 그녀는 어느새 세상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건강한 몸을 가진 츠네오의 옛 연인이 조제의 인생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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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단순한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장애를 품은 비장애인의 희생적 사랑이 현실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면, 당신은 감독을 모욕한 것이다. 이 영화는 조제가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우리는 조제의 삶이 아닌, 우리 자신의 삶을 평가해야 한다. 나는 과연 몇 점짜리 인생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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