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이중생활

추억일지

by 이녹록

좋아하는 것들에 미쳐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 중 나의 20대를 지배했던 건 음악이었다.

장르는 펑크록.

진로를 찾지 못해 고민이 많던 방황기였다.

그때 펑크록은 나의 돌파구 중 하나였다.

고3이 끝나갈 무렵,

PC 통신의 시대가 끝나고 초고속인터넷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DAUM 포털에는 다양한 주제를 가진 커뮤니티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개설되고 있었다.

그즈음 집에는 컴퓨터가 생겼고, 정보가 필요했던 나는 한 카페에 가입했다.

게시판에 올려진 공연 후기들을 읽으며 머지않아 공연실황을 대면할 그날을 한껏 고대했으나,

곧 무산되었다.

등록금까지 내고 입학을 앞둔 시점에 엄한 아버지의 의견을 따라 소위 취업이 잘 된다는 학과에 다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재수를 하게 된 것이다.

재수학원에 등록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썼고, 그 시절을 버틸 음악을 귀에 꽂아 넣으며 길고 어두운 시기를 보냈다.


목표했던 학과에 들어가면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고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적극적으로 카페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역시나 취업에 맞춰 선택한 과는 적성에 맞지 않았고, 대학 친구들은 나와 관심분야가 너무도 달랐다.

자연스럽게 학교에선 아웃사이더가 되어갔고,

수업이 비는 시간엔 카페를 더 들락거리게 되었다.

곧 내 생활 반경까지 찾아온 공연을 시작으로 활발한 커뮤니티 생활이 시작되었다.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면서 온라인상에서 안부를 나눴고, 가끔은 채팅방에 들러 시시콜콜 쓸데없는 이야기도 하며 점점 친분을 쌓았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게시판엔 커뮤니티의 주 무대인 홍대 공연 후기가 꾸준히 올라왔다.

1여 년을 카페 글만 지켜보면서 상경을 계획하던 마음이 커져갔다.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다.

자금 마련이 시급했다.

자취방 월세를 내고 식비를 최소한으로 쓰면서 용돈을 모았다.

이제 남은 문제는 쪽지시험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다들 대학에 들어가면서 원 없이 노는 모습만 보았는데,

이곳 대학에선 캠퍼스의 낭만이라곤 없었다.

시험은 매주 있었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해부학적 용어들로 가득한 수업은 귓등으로 튕겨나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공연을 포기할 수도 시험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결국 기차에서 짬짬이 시험공부를 해결하기로 하고

꿈꾸던 홍대에 입성할 수 있었다.

늘 글로만 읽던 홍대 놀이터, 공연 클럽, 채팅 속에 존재하던 온라인 회원들을 직접 보는 날이 온 것이다!

꿈같은 날들이었다.

힘든 학교생활을 버틸 수 있는 활력소가 되었다.

그 후로 용돈이 모이면 공연을 찾아다녔다.

자주 모이는 회원들과는 멤버처럼 결성이 되어 다녔고그들의 기행스러운 행각을 지켜보며 즐거워했다.

동갑내기였던 아이와는 친구가 되어 그 친구가 살고 있는 지방에 공연이 있을 때면 숙식제공을 받기도 했다.

혼자서 다니는 날도 허다했다.

공연투어 때마다 자주 마주치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내가 가입한 카페 회원들로 짐작됐지만

공연 좀 다녀본 프로의 향기가 물씬했기에 쉽게 말 걸 용기는 나지 않았다.

장르가 장르인지라 그들의 행색이 범상치 않았던 것이 한몫했다.

대담한 패션이었고, 때론 비범했다.

게다가 하나같이 두려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표정들이었다.

멤버들과 범상치 않은 그들을 보며 나도 내심 생각해 두었던 펑크스타일을 하나둘 꺼내어보았다.

헤어스타일이며, 옷이며, 액세서리며,

교수님들에게, 아버지에게, 무언의 압박을 견뎌가면서.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처음이던 그 시절만의 것들이었다.

날것의 감정,

저돌적인 계획,

그 시절 공기의 습도,

냄새까지도.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끔씩 그 시절 친구들과 대담하고 비범했던 그들이 생각난다.

힘들었지만 희망을 품었던 날들,

열정으로 가득 찼던 날들,


그날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에너지 넘쳤던 그들은 여전하려나,

함께 빛났던 그이들의 안부가 궁금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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