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식
2025. 12. 26.(금)
12월 26일.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식 전전날 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께 마지막으로 무슨 선물을 해 드리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선물세트와 꽃다발을 드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실장은 백화점에 가서 선물세트를 구매했고, 나는 크리스마스에 꽃집에 가서 담임선생님께 드릴 꽃다발을 구매해 졸업식 당일에 준비해 갔다. 나의 영원한 은사님, 김00 선생님(작년 담임선생님)께 드릴 꽃다발도 함께 챙겨 갔다.
꽃다발 크기가 좀 큰 터라 지하철을 타고 일찍 학교에 갔다. 교실에는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아서 불을 켜고 히터를 돌리고 교실 벽에 걸린 2025년 달력을 뜯어서 꽃을 감추어 두었다. 여러 선생님들께 드리기 위해 써 놓은 편지들을 교무실별로 정리하고 동선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던 중 친구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졸업가운을 입고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담임선생님께 실장과 내가 선물과 편지, 꽃다발을 전달했다. 그리고 우리는 졸업식을 위해 강당으로 향했다.
졸업식은 예상보다 더 빨리 끝났다.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내라는 학교 측의 배려인 듯했다. 교실로 올라가서 졸업장을 받고 담임선생님과 사진을 찍었다. 친구들과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하나둘씩 친구들이 교실을 나가고 마침내 나 혼자 남게 되었다. 3학년 교무실에 찾아가 지리 선생님께 편지를 드리자 선생님께서는 나를 안아 주셨다. 1학년 2학기 때 통합사회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께서도 내 이름을 부르시며 나를 응원하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본교무실에 가서 작년 생명과학 선생님을 뵈었다. 선생님께서는 정장을 입고 계셨는데 굉장히 멋지고 잘 어울리셨다. 내가 "선생님" 하고 다가가자 선생님께서 돌아보셨다. 편지를 드리자 굉장히 좋아하셨다. 내가 쓴 짧은 편지로도 누군가가 기뻐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지난번에 성당에서 그분을 본 것 같아서 혹시 ♧♧성당에 다니시냐고 조심스레 여쭈어 보니 맞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도 나를 알아보시고 인사를 할까 했는데 미사 중이라서 말을 못 건네셨다고도 하셨다. 내가 내일 세례받는다는 말을 하자 엄청 놀라시며 어릴 때 세례받은 줄 알았다고 하시곤 세례명은 정했냐고도 물어보셨다. 선생님의 자녀들이 아직 어려서 가족미사만 참례하신다는 말을 듣고 언제 한번 가족미사에 참례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옆에 계신 국어 선생님께도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다. 성격이 쾌활하신 분이라 수업도 재미있게 해 주신 분이라 더 감사했다.
이어서 올해 영어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 자리로 갔다. 항상 나를 특별히 아껴 주시던 선생님이셨다. 우리 반에서 나만 수업 시간에 대답을 해서 나만 보고 수업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눈물겹도록 감사했다. 옆에 계시던 미술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며 음료수를 챙겨 주셨다. 미술 선생님께는 편지를 못 써서 감사하면서도 죄송했다.
다음은 일본어 선생님. 교과 선생님들 가운데 내가 유일하게 스승의 날 때도 편지를 써 드린 분이다. 그만큼 수업도 재밌었고 잊고 싶지 않은 분이셨다. 선생님께서 나보고 일본어를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고 일본어 꾸준히 배우라고 하셔서 너무 좋았다. 평소 언어 배우기를 좋아하는데 부모님은 취업이 잘되는 과에 가라고 하셔서 시무룩해 있던 때 그런 말을 들으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시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고, 더불어 그런 것을 하고 싶어하는 나까지도 존중받는 것 같아 기뻤다.
몇몇 선생님들은 자리에 계시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책상 위에 편지를 올려두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다시 3학년 교무실. 2025년 한 해간 가장 많이 뵙고 함께한 선생님들이라 3학년 교무실의 대부분의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이번 수능에서 지역 공동 차석이 우리 학교에서 나왔고 서울대 등 유명 대학에 합격한 친구들도 많고 의대에 합격한 친구들도 많아서 처음엔 선생님들께 편지를 드리기가 좀 망설여졌다. 그 친구들에 비해 내 입시결과는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미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반응은 내 예상과 한참 달랐다.
수업 잘 들어줘서 고맙다, 열심히 한 거 알고 있다, 망고는 뭘 해도 잘 될 사람이다, 너무 수고 많았다, 망고를 위해 기도하겠다...
고등학교 졸업이 아쉬운 이유는 선생님들을 더 이상 못 뵌다는 사실, 그것 딱 한 가지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렇게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나의 선생님이셨다는 거. 친구들도 모두 좋은 애들이었지만 내가 친구관계를 잘 유지할 만한 깜냥이 되지 않았어서..(특히 2학년 때) 그래도 고등학생 시절 가운데 추억할 기억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참 기쁜 일이다.
김00 선생님은 누구나 좋아하던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선생님들께서 각자의 반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교무실로 돌아오실 때까지도 교무실에 계시지 않으셨다. 한참의 기다림 끝에 김00 선생님께서 2층 교무실로 올라오셨다. 서둘러 교실로 가서 꽃다발과 편지를 가지고 와서 선생님께 드렸다.
그냥 다른 선생님들께 하던 대로 편지를 드렸을 뿐인데 이유도 알기 전에 눈물이 났다. 그분 앞에서는 이상하게 자주 울게 된다. 작년에 두 번째로 입원하기 전에도 그분 품에 안겨서 울었더랬다.
유머러스한 말씀으로 아이들 사이에서 항상 인기가 많던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나를 웃겼다.
"아니 너는 담임선생님 앞에서는 안 울고.."
덕분에 나는 졸지에 울다가 웃어 버렸고 주변의 선생님들은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마음의 고향' 이라며 농담하셨다.
선생님께 내년에도 이 학교에 계시는지 여쭤보니 다른 데로 가신다고 하셨다.. 아쉬워하는 내게 찾아와도 되고 연락해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너무 감사해서 잠깐 멈췄던 눈물이 다시 났다. 그분 덕에 작년을 무사히 보내고 올해를 기쁘게 지낸 것 같아서. 인사를 드리고 교무실을 나왔다. 학교 건물 밖으로 나오자 날씨가 가슴 시리도록 쾌청했다. 최선을 다해 살아냈고 더 아쉬울 것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지낸 고등학교 생활이 맑은 날씨의 금요일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