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수능 후 첫 번째 병원 방문
성지순례 기록
수능 이후 첫 병원 진료 기록
어떻게 지냈냐
잘 지냈다
수능 어땠냐
말아먹었다
이번 수능 어려웠다며
^^
대학은 어떻게 되냐
수능 성적 나와 봐야 안다
최저는 맞췄냐
나와 봐야 안다
만약 최저 맞춤 수시납치 되는 건가
그렇다
거기가 X대 00 과인가
그렇다
만약 최저 못 맞추면 어떻게 되는 건가
대학 낮추고 낮춰서 전문대 가는 거다
너 내신이 어떻게 되냐
2.87이다
야 2.87이 무슨 전문대를 가냐
1년 더 할 자신이 없다
일단 4년제 가고 반수를 하든 하는 걸 추천한다
알겠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
동생 기말이 12월 4일이라서 동생 가르치고 있다 국어랑 영어랑 다른 과목도 봐주고 있다
동생 공부 잘하냐
머리는 좋은데 공부 방법을 모른다
너 1학년 때하고 비교했을 때 누가 더 잘하냐
당연히 내가 더 잘한다
그럼 가르치기 힘들겠다
그렇다 기초가 없어서 영어 공부하다가 국어 단어 찾아본다
학교는 잘 다니냐
나 말인가
그렇다
잘 다닌다
수능 끝나고 학교에서는 뭘 하는가
그냥 애들 풀어놓고 놀린다
수업 안 하는가?
안 한다
재수하는 애들은 3학년 2학기 기말이 성적에 들어가지 않는가
2학기 중간고사와 수행 점수를 합산해 2학기 성적을 산출한다고 하더라 엄마가 수능 끝나고 사나흘 후부터 동생 수능 칠 때 같이 쳐보라며 수학 문제 풀라 하는데 내가 졸라서 12월부터 하기로 했다
그럼 12월 되기 전까지는 뭘 하느냐
요즘 신춘문예 준비하고 있다
신춘문예? 신문에 내는 거 말인가
맞다
대단하다 너 그거 당선되면 네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근데 그거 당선될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거 당선되는 걸 등단이라 한다 등단되면 작가로 인정받는 거다 마감일은 언제까지인가
대부분 11월 말까지다 근데 엄마는 그런 거 쓰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상업성 높고 돈 되는 로맨스 소설 쓰라고 한다 근데 내가 로맨스를 아냐 난 못 쓴다
네가 원하는 거 쓰면 된다
^^
약은 한 달치 주겠다 다음 진료는 언제가 좋냐 12월 24일이 좋냐 31일이 좋냐
12월 31일도 병원 하냐
한다
그럼 31일에 오겠다 아 전에 그 인데놀인가 그 약은 빼달라 엄마가 그 약 꼭 먹어야 하겠냐고 자꾸 그런다
인데놀을 왜 넣었었던가
수능 때문에 그랬다
이제 수능 없으니 불안 요인이 사라져 인데놀은 빼도 된다 나머지 약은 그대로 주겠다
나 약은 언제 끊을 수 있나
너 대학 들어가면 끊으려 했는데 원하는 대학 못 들어가면 한 학기 정도는 더 먹을 수도 있다
...
그럼 31일 다시 보는 걸로 하고, 약 5주 치 주겠다
맞다 나 12월 27일 세례 받는다
세례?
그렇다 엄마 몰래 다녔다
고등학생이 엄마 몰래 다닐 수 있냐
안 그래도 묵주팔찌 때문에 걸렸다
그럼 그렇지 성당을 몰래 다닐 수가 있냐
엄마는 내가 성당 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엄마 종교가 뭐냐
무교다
세례명은 정했냐
___로 하려 한다
그럼 대모는 누가 서 주냐
한 살 많은 언니가 서 주기로 했다
잘됐다 그러면 잘 지내고 31일에 보자
감사합니다
잘 가라
안녕히 계세요
수능이라는 거대한 시험이 끝난 뒤라서일까, 11월은 꽤 낯설고 또 꽤나 묘하게 느껴지는 달이었다. 예상 외로 차분하면서도 제법 충동적이었다. 생각보다 달라진 게 없으면서도 무언가 크게 움직인 것 같은 2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