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족 간의 사이가 매우 좋음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엄마는 자녀 학업에 매우 열정적인 분이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이른 사춘기가 왔을 때라 공부를 소홀히 했고, 두 살 터울 남동생은 한창 수학에 빠져 중3 수학 문제집을 열심히 풀어 댔다. 그 시기 집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싸움은 모두 나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나만 잘하면 집안이 평화로운데, 딱 공부 하나만 잘하면 되는데 그게 너무나도 하기 싫었다.
모범적인 동생은 언젠가부터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나는 동생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에 시달렸다. 어느 날이었다. 아주 평범하고 색다를 것 없었던 그날.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생이 내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공부를 하지 않고 일기를 쓰는 것 같다며 내 방을 꼼꼼히 살폈다. 당시 나는 공부 시간에 몰래몰래 연습장에 내 감정 등을 끄적였고, 동생은 그것을 찾아내려 했다. 엄마한테 말해 봤지만 공부 못하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불평할 자격조차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동생은 더욱 기세등등해져 일기를 쓴 기록을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결국 연습장에 끄적인 글들을 보지 못하고 방을 나섰다.
동생이 방을 나간 뒤 재빨리 방문을 닫고 연습장을 꺼냈다. 공부 이외의 내용이 적힌 페이지를 모두 잘게 잘게 찢어서 학교 가방에 넣어 두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화장실 변기에 작은 종이 조각들을 버리고 물을 내렸다. 종이조각이 모두 물에 휩쓸려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고서야 화장실을 나왔다.
그럼에도 일기를 쓰고 싶었다. 당시 휴대폰은 폴더폰이었고 내 취미는 폴더폰에 있는 지하철 노선도를 보는 것이었다.(이건 다음 주에 마저 쓰도록 하겠다.) 폴더폰의 메모장 용량은 매우 작았고 컴퓨터는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 이외에는 사용 금지였다.
노트를 뜯어서 쓸 수 있는 가장 작은 글씨로 일기를 썼다. 불투명 L자 파일에 일기를 끼우고 책 사이에 파일을 끼우고 그 책들을 상자에 담아 상자 뚜껑을 닫은 뒤 상자 위에 자질구레한 짐들을 올려두었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렇게 며칠을 쓰고 또 찢어 버렸다. 쓰고 찢어 버리길 반복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첫 스마트폰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오직 학급 단체 카톡방을 위해서였고, 엄마는 내가 다른 친구들과 개인톡을 하면 안 된다고 단단히 못 박으셨다. 시간 낭비를 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예고 없이 휴대폰 검사를 실시한다고도 말씀하셨다. 막상 스마트폰이 생기자 친구들이 문자 대신 카톡으로 연락을 해왔고, 엄마가 친구에게서 온 개인 카톡을 본 순간 너무 놀라 울어 버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멀리 있는 학교를 다니며 엄마가 내 일상에서 조금씩 멀어졌지만 여전히 나는 엄마 손 아래에 있었다. 엄마가 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기를 쓰고 찢어 버리기를 반복하다가 점점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욕구를 잃어 갔다. 아끼는 물건이 있으면 오히려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어디에도 애정을 붙이지 않았다. 디지털 데이터도 마찬가지였다. 필요 없는 사진은 바로 지우고, 무엇 하나를 검색하면 바로 삭제해야 했다. 이 세상에서 나의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기며 정리정돈과 청소에 집착했다.
커뮤니티 같은 데도 글을 써 봤고 유튜브 계정도 만들어 영상에 댓글을 남겨 보기도 했지만 밀려오는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러한 강박은 여전하다. 성당 관련 물품(성경, 기도문, 묵주, 성상, 손십자고상, 미사보 등등)은 몇 겹으로 싸서 꼭꼭 숨겨 두고 지낸다. 종이 일기장에 일기를 쓰지 않은 지는 한참이나 되었다.
그럼에도 나라는 사람은 탈출구를 찾아냈다. 성당, 브런치스토리, 인스타그램의 성당 계정(다른 계정도 만들어 봤지만 기록 남김의 불안감이 너무 커서 곧바로 삭제하고 말았다).
가끔은 이런 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