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와 사랑의 경계
엄마는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다. 엄마가 자라온 환경과 지금까지에 이르기까지 겪은 삶, 그리고 엄마가 본래 지닌 기질이 합쳐져 그러한 결과가 나온 것일 테다. 문제는, 그 불안이 엄마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엄마는 불안을 자식인 나에게 투영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혼자 현관문을 열고 학교에 간 적이 없다. 항상 집 앞 작은 도로까지는 엄마가 동행했으며 도보 10분 남짓한 등굣길에는 언제나 동생과 함께 가야 했다. 만약 우리가 떨어져서 걷는다면 엄마가 뒤에서 쫓아올 것 같았기에. 등 뒤에서는 시선이 느껴졌고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 보면 항상 걱정이고 사랑인데 내가 유난스럽다는 결론이 났다.
중학교에 입학하는 해, 코로나가 크게 유행했다. 등교수업이 미뤄지다 6월에 첫 등교를 했다. 중학교도 집에서 가까웠다. 도보 15분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는 나를, 엄마는 한동안 우리 집 베란다 창문으로 지켜보았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와 놀고 싶었지만 내가 공부를 많이 소홀히 해서 1주일에 단 1시간만 산책이라는 명목으로 야외에서의 자유시간이 허용되었다. 현관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정확히 50분이 되면 전화가 걸려왔다. 1시간을 넘어서 집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딱딱한 질책이 날아왔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좋았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유일하게 가족 없이 바깥바람을 쐬는 첫 경험이었다.
고등학교는 1지원에 1지망 2지망, 2지원에 1지망 2지망 학교를 써내는 방식으로 원서를 내야 했다. 보통은 ABAB처럼 1지망 두 개를 같은 학교, 2지망 두 개를 같은 학교로 낸다고 했다. 나는 ABAB와 ABBA 중에서 참 많이 고민했다. 우리 학년이 인원이 많기도 하고 인원에 비해 근방의 학교는 단 두 개뿐이라 다수의 인원이 시내 쪽으로 배정받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우리 동네 학교로 갈 확률을 높여야 했고, 엄마는 ABBA로 내자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학교 선생님 말을 듣고 ABAB로 내기로 결정했고 엄마의 만류에도 내 생각대로 원서를 썼다. 그 결과 A고교도 B고교도 아닌 제3의 학교인 D고교로 배정을 받았다. D학교는 전국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입결을 자랑하는 명문 일반계 고등학교이다. 내신을 잘 받기 어려울 뿐더러 집에서 지하철로 일고여덟 코스 정도 떨어진 먼 학교였다.
학교를 먼 데 가니 자연스레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아졌고 자율학습을 밤 11시까지 할 때가 많아 더더욱 그러했다. 친구들은 입버릇처럼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이 참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시기이다. 지난 1월, 성당에서 나와 동갑인 친구들을 데리고 1박 2일로 놀러 가는 행사가 있어서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냈다. 너무나도 즐겁고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가족 없이 밖에서 잔 적은 병원 입원, 학교 수련회를 제외하고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곳에서 학사님들과 부제님과 많이 친해졌고, 대학을 우리 지역에서 다닐 예정인 친구들과 함께 교리교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중고등부 부담임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집에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성당에 다닌다고 말했을 때 엄마가 강조한 것들 중 한 가지가 성당 생활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는 것들이라서 교리교사 한다는 말을 하면 성당에 아예 나가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례받을 때도 말을 않고 나가서 받고 왔다. 선물을 한 보따리 받아서 들키긴 했지만.. 지금은 그 선물들을 여러 겹으로 싸서 숨겨 두었다. 나는 지금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중이고 혹시 모르니까.
엄마한테는 허락을 구하면 안 된다. 통보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생 아무것도 못하며 살아야 한다. 서로 생각이 다르면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데, 엄마가 원하는 답은 정해져 있다. 답이 정해진 질문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 보면 자아가 흐릿해진다. 내가 투명해지며 사라지는 느낌과 동시에 엄마의 영혼이 내 몸에 들어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아빠는 이 모든 걸 이해하지 못하신다. 통제가 심한 것 같다는 말을 하면 안 그럴 때도 있었잖냐며 반례를 들어 반박한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이제는 계좌이체도 할 수 있고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돌아다닐 수도 있고 현관문을 열고 나갈 수도 있다. 그 정도면 옛날에 비해 엄청나게 많이 풀어준 거라고 한다. 그 말을 믿고 싶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