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고등학교 때까지는 친구들이 모두 동일한 길을 걷고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친구도 있었고, 예체능 준비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인문계 고등학교 특성상 모두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다는 건 같았다.
2026학년도 수능은 꽤 어려웠다. 특히 영어가 유독 어렵게 나와서 수시 최저등급을 맞추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정시 원서를 어디 낼지 고민하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당연히 합격할 거라 믿었던 곳에 불합격하고 재수를 고민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우리 학교는 졸업식을 12월 말에 했다. 정시 원서를 접수하기도 전이었다. 다른 학교보다도 월등히 이른 졸업식. 졸업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여전히 같은 선에 서 있었다. 수시 합격자는 대학 걱정을 하지 않았고 수시 탈락자는 정시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것이라고 여겨 걱정을 내려놓았다.
2월쯤 되자 정시 발표가 났고 정시 충원합격자 발표까지 모두 마무리되었다. 건너 건너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누구는 정시에 불합격해 재수를 한다더라, 누구는 반수를 한다더라, 누구는 다른 지역으로 가 자취를 하고 또 다른 친구는 외국으로 대학을 간다더라.
처음으로 한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동급생들의 출발선이 달라진 순간이었다. 나는 원래 지망하던 계열로 가지는 못했지만 학문적으로 적성이 맞는 과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고3 때 같은 수능 과목을 택하고 매일 교실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듣고 발표했던 친구 A가 재수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A는 정시로 스카이 대학 중 하나에 합격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과라서 입학을 포기한 듯했다. 또 초중고 동창 B가 있는데 B도 이번에 재수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냥 그 친구들이 다들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월감이나 열등감도 나의 미래에 대해 얼만큼의 기대와 목표가 있어야 생긴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합격한 과는 내가 좋아하는 과목들을 위주로 배우는 학과이다. 그리고 취업이 잘 된다. 이 두 가지가 지금의 나를 안주하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잘 닦여진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는 안정감이 더 크다. 그걸 원해서 수능 성적을 손해 보면서까지 재수를 피한 것이다.
큰 성공, '한 방' 을 향해 노력하는 건 내게 맞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을 올망졸망 나열해 가며 그냥 또 하루의 오늘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게 최고의 삶이다. 나와 다른 목표를 가진 친구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