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그래서일까. 세상은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목소리는 가볍게 무시해 버려. 아파하는 사람을 보더라도 그 상황은 지인들과 얘기할 때 지루함을 달래주는 용도로밖에 쓰이지 않아. 다들 아파하니까. 다들 힘들어하니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 따위는 들여다볼 생각이 없나 봐. 하긴, 주변의 모든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면 그 사람의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너덜너덜해질 테니. 근데 또 유행에는 놀라울 정도로 민감해서, 유명인들의 아픔에는 관심을 가져. 물론 관심의 결과가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불행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불행의 이유, 홀로 버텨 온 외로운 시간들의 길이, 그 사람이 경험한 극한의 정도와 빈도를 드러내는 지표, 그리고 힘껏 꾸며 낸 완벽한 겉모습이 필요한 것 같아. 아무리 열심히 노력했더라도 세상은 1등만 기억하고, 성공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해온 노력은 철저히 무시돼. 불행도 마찬가지인 듯해. 불행으로 가득 찬 땅에서 얼마나 많은 성취물을 수확했는지 증명해 주는 자료가 없다면 모두 무효가 되는 거야. 지금까지 해온 것 모두.
스스로 느끼기에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과거만을 가졌더라도 위로는커녕 비판받는 경우가 더 많잖아. 자기는 더 힘들었다면서 여기저기서 훼방을 놓는 사람들이 꼭 있으니까. 그냥 자기가 이렇게 힘들었었다. 이런 순한 전개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는 이러이러해서 힘들었다. 그러나 너는 충분한 시련을 겪어 보지 못해서 내 심정을 모른다. 따라서 너는 불행하지 않다. 너는 단지 나약하고 의지가 부족한 패배자일 뿐이다. 이렇게 연결되는 경우가 대다수야.
그냥 한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만 봐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나 봐.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서일까.
글쓴이의 자존감과 자기애가 낮다는 사실만을 여실히 드러내는 그 날선 말 한마디로 삶에 지친 누군가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수 있는데.
불행을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참 아이러니한 세상에서는 새삼 느끼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매일 수백 개의 화살이 날아다니고 있는 것 같아.
아무렇게나 쏜 화살에 맞은 사람은 그저 운이 나쁜 사람이라고 치부할 뿐.
내가 오늘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실은 내 아픔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가 아닐까.
글을 쓰며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퇴고하고, 글의 흐름을 체크하면서.
서늘한 무관심에 절여지는 날이 올까 두려워서.
오늘도 이렇게, 나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