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월 학평 이후 열흘

그리고 벚꽃

by 망고

시험을 치르고 다음 날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가채점한 임시 성적표가 나왔다. 대충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2학년 모의고사 때보다 더 낮은 점수였다. 3월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면 선생님들께서 실망하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성적을 보고도 아무도 내게 '현실적으로 목표를 낮추라' 거나 '이 정도면 네가 희망하는 데 내기 어렵다'라는 말을 하시지 않으셨다.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더 친절해졌달까. 타 학교의 진로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오셔서 진행하시는 입시컨설팅도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신청해서 참여해 보았다. 택도 없는 성적을 보시고도 내가 희망진로분야에 써 놓은 대로 내신/수능 커트라인이 높은 대학 입결 등을 쭉 보여 주셨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내 친구는 담임선생님과 상담할 때 선생님께서 한숨을 쉬셨다고 하고, 또 다른 친구는 이러이러한 과목이 부족하니 이 과목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는 따끔한 피드백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망고는 원래 공부 잘하고 머리가 좋으니까 다음 시험에서는 더 잘할 거다. 선생님은 망고 응원한다"라고.


다들 나는 될 거라고 하는데 나만 나를 과소평가해 왔다. 어쩌면 나의 역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기 계발서 등에서' 타인의 평가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의 평가에 집중하라' 등의 글을 여러 차례 읽었었다. 하지만 지금 내겐 그 문장이 반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 같다.




교정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쉽게도 작년까지 가장 풍성했던 벚나무는 가지치기를 당해서(?) 볼품없는 꼴이 되었지만, 교문 근처에 줄지어 핀 벚꽃을 배경으로 학급별로 시간을 달리해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우리 반은 단체사진을 찍기 하루 전날 우리 학교인 것이 드러나는 옷(교복, 생활복, 체육복 등)을 입고 오라고 담임선생님께서 공지하셨다. 학급의 친한 친구 몇몇과 함께 교복을 입고 등교했다. 블라우스에 교복 마이를 입고 치마를 입었다. 오랜만에 풀세트로 교복을 입으니 1학년 때로 돌아간 듯했다.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보고 "그렇게 입으니까 망고 여고생 같다(여고생입니다만..?)"고 예뻐하시면서 사진을 찍어 주셨다. 담임선생님 시간에 학급 사진을 찍으러 나가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시간이 더 주어졌다. 오랜만에 교복도 입었겠다, 다들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열심히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벚꽃 아래서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이 꿈만 같았다. 이 학교에 배정받은 것이 나의 가장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중 가장 행복한 하루였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해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올해까지, 14년 가운데 제일 편안했던 학급이 지금 우리 학급이라는 사실이 내가 나를 가두지 않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우리를 가볍게 스쳐가는 봄바람이 내게 슬며시 귀띔해 주는 듯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월 학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