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 찬장에는 계몽사의 세계동화전집이 있었고, 나는 그 동화책을 읽으며 자랐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엄지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 공주시리즈를 지나 재크와 콩나무, 신밧드의 모험 등 흥미진진한 모험스토리를 읽었다. 초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작은아씨들, 로빈슨크루소, 괴도 루팡 등 세계명작전집을 읽었다. 원래 전집으로 사면 아이들은 잘 읽지 않는데 우리 삼 남매 중 유일하게 나만이 그 전집을 다 읽었다. 성인이 돼서는 한창 신경숙, 공지영, 은희경, 김영하, 김훈, 이문열 등의 한국문학에 몰두했고 검은 머플러와 안개를 연상케 하는 전혜린의 에세이도 참으로 좋아했다. 최근에는 영성과 선불교에 관심이 많아져 영성 서적을 참 많이도 읽었다. 내 인생의 절반쯤은 독서로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나의 부모 책 사주는 것에 인색했다. 건축현장에서 기술노동자로 일하던 아빠의 벌이로는 여섯 식구가 넉넉히 먹고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 집에서 나만 유일했다. 환경이 그러하다 보니 십 대에는 많은 책을 읽지 못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책을 많이 사읽으려고 노력했다. 2년 전에 인터넷서점에서 이벤트로 그동안 구입한 책 내역을 정리해서 리포트를 작성해 주었는데 내가 책 구매에 쓴 비용이 자그마치 1,200만 원이었다. 그 온라인 서점에서 산 책만 집계된 것이니 지금까지 총비용을 따져보면 대략 2,000만 원 이상이 될 것 같다. 그 정도면 국립대에서 운영하는 대학원 5학기를 마치는 비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등록금에 준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며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토록 알고 싶어서, 무엇이 그토록 얻고 싶어서 나는 그 오랜 시간을 책 속에서 방황하였나.
일단은 혼자였고, 심심했고,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내 주변인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시시했다. 어쩌면 책을 통해 눈만 높아진 '중2병'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주변인물들과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책으로 손과 눈이 갔던 것 같다.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이토록 지루하고 시시하고 지질한데 작가들이 사는 세상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우아하고 낭만적인지 모르겠다. 밤새 빠져들며 읽었던 이야기들은 이제 기억에서 가물가물하고 책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잘 모르겠다. 책의 내용이나 얻은 깨달음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책을 읽던 그 시간만큼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황홀한 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감히 흉내 낼 수도 없고 가질 수 없던작가들의 가슴 서린 감성과 올곧은 사상, 정의에 대한 완고함, 삶과 문학에 대한 열정,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연민, 학문에 대한 진지함 등의 태도를 나도 갖고 싶다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지향점은 내가 읽은 책의 '작가들'이었다.
마흔세 살이 된 지금의 나는, 내가 읽던 작가들을 얼마만큼 닮아가고 있는가. 굳이 말도 안 되게 우월한 롤모델들을 지정해 놓고 나 자신과 비교하며 자책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욕망을 여전히 내려놓을 수 없다. 그 욕망이 나를 살게 했고, 그 욕망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한 엄마와 중학교만 졸업한 아빠 사이에서 나는 단 한 번도 학문과 문학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배우지 못했지만, 그 간극을 메워준 건 책이었다. 어쩌면 나의 진정한 부모는 책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나는 부모처럼 살 것을 택하지 않았고 언제나 내가 읽은 책의 작가들처럼 살 것을 선택해 왔다. 나는 어느새 나의 부모보다는 작가들을 더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선택들을 나의 부모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새 나의 삶은 나의 부모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