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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은도인 Nov 27. 2024

어쩌면 저는 조울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때 그랬구나.

초진 상담할 때 의사 선생님은 제게 혹시 조상이나 가족 중에 자살시도를 한 사람이 있는지를 물으셨습니다. 양극성 장애(조울증)는 유전의 영향이 크다고 하네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심리나 정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시절이었던지라 윗세대의 병력까지 밝히긴 어렵습니다. 조금 이상해도 그때는 병인줄도 모르고 그냥 살던 시대였으니까요. 지금처럼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이 한 건물 건너 하나씩 있던 시절이 아니지요. 하지만 제가 특수교육을 공부하며 나름 관찰 대상으로 삼던 혈족이 한 분 계셨으니, 바로 저의 삼촌입니다. 제가 지켜본 바로는 중증의 알코올중독과 품행장애가 의심되는데, 제가 조울증 진단을 받고 보니 삼촌 또한 조울증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의 삼촌은 몇 해 전에 돌아가셨고, 저를 비롯한 우리 삼 남매는 삼촌의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저의 부모님과 고모와 당숙부, 이렇게 네 분 이서 치른 조촐한 장례식이었습니다. 삼일장도 치르지 않고 하룻밤 안치 후 바로 발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삼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십 대 때부터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양아치 같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할머니에게 돈을 뜯어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할머니 말로는 원래 착했는데 친구를 잘못 만나 그렇게 됐다던데, 원래 착한 사람이 친구 한 번 잘못 만났다고 그렇게 되진 않지요. 아마 그때쯤 정신병이 시작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평소에는 말도 없이 조용한 삼촌은 술만 마시면 밤새 주변 사람을 붙들고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마지막엔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때려 부수거나 시비 거는 것으로 끝납니다. 술 마시고 운전하다 면허가 취소되어 가끔 무면허로 트럭을 몰고 다녔고요, 이유는 잘 모르지만 주민등록 또한 말소되어 있었습니다. 술 마시고 시비 끝에 칼부림을 해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적도 있고요, 편의점에서 소주를 훔치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농약을 마시고 자살 시도 한 적도 있고요.  주량은 소주 수십 병입니다. 결국 삼촌은 어느 겨울날 뇌출혈로 쓰러졌고, 식물인간으로 2년가량을 살다 돌아가셨습니다.


조울증 진단을 받은 후, 제 병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중인데 삼촌의 이런 증상들이 모두 극심한 조증에 해당되더라고요. 이 정도면 병원에 입원시켜야 하는 심각한 수준인 거지요.


그리고 제게는 얼굴을 본 적 없는 고모가 한 분 계십니다.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싹싹하니 상냥했다던데, 그래서 새색시인 우리 엄마가 참 좋아한 고모였다는데, 그래서 꼭 보고 싶은 고모인데,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죽은 고모 이야기는 집안의 금기인지라 잘은 모르지만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했는데 그에 대한 아픔으로 자살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1970년대였던 그 시절에는 둘째 마누라가 흔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모는 그 유부남 집에 들어가 본처와 함께 살고 있었다고 들었고요. 우울한 스토리이긴 하지만 당대의 분위기상 자살로까지 몰고갈 극한의 아픔은 아니지요.


저는 고모가 우울증 내지는 조울증의 상태였다고 추측해 봅니다. 파국으로 치달을 것을 알면서도 위험한 관계에 쉽게 빠져들고, 친절하고 말 잘하는 성격 등으로 추측해 봤을 때 조울증의 가능성이 높지요. 이런 것들은 조증의 특성이니까요. 조울증이 우울증보다 자살할 확률이 더 높다고 합니다. 조증 상태에서 느꼈던 고양감과 울증일 때의 우울감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라네요.


이렇게 저는 자살시도한 혈족과 자살한 혈족을 모두 갖춤으로써 조울증의 계보를 완성하였습니다. 저는 얼굴도 그렇지만 성격까지 친가 식구들을 쏙 빼닮았습니다. 고모와 삼촌의 정신병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언니와 남동생보다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제가 그래서 그랬네요. 얌전하고 내성적인 제가 겁도 없이 채팅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독서동호회와 와인동호회를 다녔습니다. 뜬금없이 사주를 배워보겠다며 대학원에 등록해 1년 치 등록금 천만 원을 납부하고 그만둔 적도 있습니다.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덜컥 상가를 임대해서 꾸미다가 도저히 자본을 끌어올 데가 없어 시작도 못하고 그만 둔적도 있지요. 조상님께 빌면 모든 게 잘 될 것 같은 희망에 대출을 받아 굿도 해보았고요.


자취를 시작하며 혼술의 매력에 빠져 7일 중 4일은 맥주를 2,000ml ~ 3,000ml를씩 마셨습니다. 술을 안 마실 때는 안 마시는데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았어요. 머릿속엔 술과 음식 생각뿐이었고 저는 틈만 나면 먹고 싶었고 마시고 싶었습니다. 혹시 탕후루 11개를 먹어 보셨나요? 어느 날 맥주 2,000ml와 양념치킨 반 마리를 먹은 후 디저트로 탕후루 4개를 시키자 서비스로 5개가 배달되었습니다. 깨물면 톡 하고 터지는 게 어찌나 맛있던지요. 5개 먹고도 성이 안 차서 5개를 더 시키자 서비스로 6개가 배달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6개를 더 먹었답니다.


저는 매사에 적당히를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옷에 꽂히면 옷을 잔뜩 사고, 향수에 꽂히면 향수를 잔뜩 사고, 화장품에 꽂히면 화장품을 잔뜩 사고, 만년필에 꽂히면 만년필을 잔뜩 사고, 보이차에 꽂히면 보이차를 잔뜩 사고, 문구에 꽂히면 문구를 잔뜩 사고, 인센스에 꽂히면 인센스를 잔뜩 샀습니다. 인테리어에 꽂히면 가구나 소품들을 사  들였습니다.


사실 저는 이렇게 계획 없고 무절제한  제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많이 먹고, 많이 자고, 맨날 먹을 생각만 하는 제 자신이 싫었어요. 돈관리를 잘 못하는 제 자신이 싫었어요. 말할 때 흥분해서 빨리 말하고 얼굴이 잘 빨개지는 제가 품위 없어 보여서 싫었어요.  울 일도 아닌 일에 눈물이 나는 제 자신이 수치스러웠어요. 세상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며 울컥이라니요!


그런데 조울증 때문에 그런 거였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다행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저를 싫어할 뻔했거든요. 조울증은 두뇌에서 특정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으로 생기는 거잖아요.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약 먹으면 조절할 수 있는 거잖아요. 나아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다행입니다.


저는 양극성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약물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입니다.


제가 나쁜 사람이라서, 제가 부족하고 무능한 사람이라서 그렇게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간절히, 잘 살고 싶습니다.

행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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