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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은도인 Nov 28. 2024

어쩌면 저는 조울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2.

저는 제가 잘 살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되돌아보니 저의 주된 기분 상태는 우울이었습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에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삶이 무의미하고 부질없다고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외롭고 공허했습니다. 일도, 사랑도,우정도 모두 실패였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차피 삶은 저의 뜻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되는대로 대충 살았습니다. 세수를 하거나 청소를 하는 것도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십여 년 간은 저녁에 양치도 하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잠들었지요. 화장실 청소 하는 것이 너무 귀찮아 어플로 도우미 이모를 부르기도 했어요. 날마다 몸이 무겁고 피곤했으며 자도 자도 졸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 뜨자마자 피로감과 졸림이 밀려왔고, 알람 소리 들으며 눈을 뜨면 "아, 시발, 또 시작이네. 좆같아."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내향인이라 부끄러워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욕을 못하는데요, 대신 속으로 욕을 무진장했어요. 제 마음속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온갖 욕들이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수치심과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했고요. 아마도 이러한 감정들은 유아기 때부터 시작되어 십 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점차 심화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저는 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고 잘 자고 잘 먹는 사람이었던지라 제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넘어갔습니다. 더구나 때때로 기분이 고양되는 조증이 있었기에 우울한 기분이 지나가고 나면 행복감과 충만감이 찾아왔지요. 제가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아채기 힘들었어요. 제가 조울증 진단을 받고 보니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어요. 1층 아파트에서 이십 년 가까이 살다가 27살에 7층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요, 전 창문을 바라볼 때면 '여기서 뛰어내리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이 강박적으로 들었어요. 그러다 정말로 제가 뛰어내릴까 봐 걱정되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그게 자살충동인지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지금도 높은 건물에서 창밖을 바라볼 때면 늘 '뛰어내리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조울증이라니 이런 생각들에 전부 '강박 내지는 자살충동'으로 꼬리표를 붙여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했고, 충만했습니다. 우울한 감정들마저 사랑했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못난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했습니다. 혼자서 술 마시는 시간이 잦았지만, 전 그렇게 어두운 조명 속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맛있는 음식과 함께 맥주 마시는 시간들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물론 주량을 조절 못해서 '두 캔만 마셔야지.'라는 다짐이 '네 캔만 마셔야지.'가 되고, 급기야 술이 부족해 편의점에 사러 가거나 생맥주를 배달시키기도 했지만요. 때때로 필름이 끊겼고, 숙취로 인해 다음 날 출근길에 운전하는 차 안에서 토하거나 교실의 싱크대에 토하기도 했지만 저는 그런 제 모습조차 사랑스러웠습니다. 저는 호기심이 많고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원도 두 개나 다니고, 심지어 종교도 두 번 개종했습니다. 기독교에서 무속에서 불교로요. 독서모임, 보이차모임, 와인 모임, 불교모임에도 가 봤고요. 굿도 해보고, 부적도 써보고, 패러글라이딩과 스킨스쿠버도 해 보았습니다, 그토록 내성적인 제가요.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지요. 책이든, 보이차든, 만년필이든, 노트든, 맥주든, 글쓰기든, 커피든 미친 듯이 몰입하는 제가 좋았습니다.


때때로 모든 게 다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소비활동을 하기도 했지요. 때때로 제가 너무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사람들도 모두 사랑스럽게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조증 때문이라네요. 조증의 특징 중 하나는 병식(자신에게 병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없는 것이랍니다.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특수교육을 공부할 때 양극성장애에 대해 배웠음에도요. 조증의 가장 큰 특징은 '잠을 안 자고, 밥을 안 먹는 것'인데, 저는 잘 먹고 잘 잤거든요.


저는 제가 잘살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제가 행복한 줄 알았습니다. 저는 제가 제 마음을 잘 돌보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미안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있는 자신에게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보내 봅니다.


"이 정도면 잘 컸다. 잘 살아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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