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세상에서 43년간을 살면서 마음이 많이 다치고 아팠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제가 잉태되던 순간부터 저는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1980년대에 장손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났거든요. 요즘에 태어났다면 둘째 딸일지라도 딸이라고 환영받았을지도, 딸바보 아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라떼는 그러지 않았지요. 요즘은 체벌이 아동학대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지만, 저 어릴 때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폭력과 폭언에 다들 둔감했습니다. 제가 잉태되어 태어나기까지 아들인 줄로만 믿고 있던 엄마도 밉고, 제가 세상에 처음 나왔는데도 딸이라는 이유로 저를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빠도 밉습니다. 제가 당신들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저보다 힘이 세고 아는 것이 조금 더 많다는 이유로 화내고 때리던 언니, 엄마, 아빠가 너무 밉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폭력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로만 구성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만, 여리고 예민한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체벌이나 화가 커다란 상처로 남을 수도 있는 겁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니니 더 가관이더군요. 함부로 놀리고 때리는 아이들부터 무지막지하게 마대자루를 휘두르고 뺨을 갈기는 교사들까지요. 몽둥이로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맞는 것은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할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수줍음 많은 어린 소녀는 학교 생활 자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못되고 영악하기 짝이 없었고, 저는 도저히 그들처럼 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언제나 그들 속에서 겉돌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과 함께 놀고 웃던 그 순간에도 저는 너무 외로웠고, 저만 다른 사람인 것 같았어요. 어른이 되면 달라질 것 같아서, 어른이 되면 이런 아이들을 만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빨리 어른이 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죠.
어른이 되고 보니 제가 상상하던 그런 낭만적인 대학 생활은 없었어요. 웃기고 말 잘하는, 소위 말하는 '인싸기질'의 사람들이 임원을 도맡아 하며 인맥을 쌓고, 돈 많은 집 자식들이 어학연수를 가거나 편입 준비 등을 하며 자기 계발을 하고 있었죠. 남자들은 예쁘고 날씬한 여자들에게만 친절했어요.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은 대학에 다녔는데 대놓고 사는 동네를 물어보았고, 저의 가난은 더 이상 교복으로 가릴 수 없었어요. 대학도 제가 있을 곳은 아니었습니다. 스무 살, 성인이 된 아이들은 전혀 성숙해지지 못한 채 사는 지역과 가방의 브랜드,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며 끼리끼리 그룹을 형성했습니다. 스무 살이 된 저는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 과에서 운영하는 여행동아리에 지원했는데, 인원이 다 차서 안된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부러 저를 받지 않은 거더라고요. 저는 그들과 다른 그룹이었으니까요.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저의 조울증과 ADHD로 인해 공부가 어려워 임용고시를 통과하지 못해 동네의 작은 학원강사로 살아야 했는데요, 임용고시에 합격한 친구에게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소개팅이 제게는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제게 상처가 될 것이 뻔한 말과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저의 조그만 말실수에도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저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언덕에서 속도가 나지 않는 저의 경차 뒤에서 쌍라이트를 깜빡이며 경적을 울리는 사람들을 저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자신의 힘든 상황에만 매몰되 타인은 돌보지 못하고 힘든 자신을 무조건 이해해 달라며 이기적으로 구는 사람들을 저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달콤한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속삭이던 남자가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행동 바뀌듯 돌변하는 연애를 촌스러운 저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그들처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세상입니다. 수학여행 가는 바다 위에서 배가 가라앉았는데 선장은 도망가고, 백 명이 훨씬 넘는 숫자의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되어야 했습니다. 핼러윈이라고 이태원에 놀러 갔다가 도로 한 복판에서 백 명이 훨씬 넘는 숫자의 사람들이 숨이 막혀 죽어야만 했습니다. 장마철에숨진 사람의시신을 찾겠다고 나선 건장한 군인이 시신이 되어 돌아왔지만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는 없었고요, 어엿한 선진국의 대통령들이 무속인에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지요. 교육계의 행정적, 구조적 문제로 인해 교사들이 고통받고 있고 급기야 목숨을 끊는 선생님들까지 계시지만 세상은 바뀔 생각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다행히 아직 죽지 않고 생존해 있습니다. 제가 미친 건가요, 세상이 미친 건가요? 이런 세상이 정상이라면, 전 차라리 미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제가 미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기 어려운세상입니다. 요즘 정신과에 다니는 사람들, 상담실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죠. 이 미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옳은 걸까요? 저는 정말이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조건 착하게 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못되게 살 수도 없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