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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은도인 Nov 29. 2024

미칠 권리를 허락하소서.

조울증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람을 웃게 하고 싶을 때면 탕후루 열한 개 먹은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열심히 산다는 칭찬을 듣고 싶을 때는 대학원을 두 개나 다니고 독서동호회, 보이차 동호회, 와인동호회 다닌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욜로족처럼 보이고 싶을 때는 맥주 마신 이야기나 혼자 여행 다닌 이야기나 쿨한 소비 생활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늦은 나이에도 도전정신이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싶을 때는 바리스타 자격증 딴 이야기나 패러글라이딩 한 이야기, 스킨스쿠버 한 이야기, 수영 몇 달 배운 이야기, 구몬 영어와 일어를 공부한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자조가 아니라 실제로 조증은 저와 제 삶을 풍요롭게 채워주었습니다. 취미와 취향을 갖게 해 주었고, 젊은 나이에 마음껏 옷도 사 입어 보았고, 여러 배움들을 접하게 했습니다. 우울증 에피소드를 견딜 힘은 어쩌면 여기서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취미와 취향 그리고 공부는 우울한 삶을 버티게 하는 버팀목이었습니다.


물론 조증 에피소드로 인해 통장 잔고는 바닥이 나고 심지어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지만, 저의 금전적 손실 말고는 별다른 피해는 없습니다. 가족들도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기에 가족이나 타인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한 적은 없으며, 워낙 내향인인지라 타인들에게 속된 말로 광증이나 지랄을 부린 적도 없습니다. 저 혼자 몰래 조용히 사고를 쳤고 또 저 혼자 몰래 조용히 수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과정이 피폐함이라면 피폐함이지만 저는 그 과정에서 살아있음을 느꼈고 즐거움과 행복, 환희를 느꼈습니다. 조증의 가장 특징이 병식이 없다는 것이고, 실제로 조증인 시절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환자가 많다고 합니다. 제가 어떤 말을 하든 환자의 변명이 되겠지만 저는 환희와 우울을 반복하며 생생히 살아있다는 감각느낀 건 분명합니다. 때로는 세상과 하나 듯했고, 그저 감사와 기쁨만 넘치기도 했습니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물을 먹은 첫째 날,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며 토할 것 같았고 팔다리에 추가 달린 듯 무겁게 느껴졌으며 졸렸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러한 증상들은 점차 사라져 지금은 약을 먹든 안 먹는 별다른 신체변화가 없습니다. 이제 겨우 이주가 지났을 뿐인데 저의 몸은 빠르게 약물에 적응하였습니다. 약을 먹은 첫날부터 제가 깜짝 놀랐던 변화가 하나 있었는데요, 커피가 전혀 마시고 싶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커피를 워낙 좋아했고 하루에 서너 잔은 거뜬히 마시던 저인데 말이죠. 제가 그토록 사랑하고 예찬하던 커피가 별로 마시고 싶질 않습니다. 저는 항상 먹을 생각뿐이었고 세상 모든 음식이 너무너무 맛있었는데요, 음식 생각이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배고파서 끼니를 챙겨 먹기는 하지만 그냥 맛있지 예전처럼 너무너무 맛있지는 않습니다. 맥주는 마시고 싶긴 한데 저의 의지로 통제가 가능해졌습니다. 약과 함께 먹으면 좋지 않으니 맥주를 마시지 않고 참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약을 먹기 이전에는 세상이 온통 "너무너무"였다면, 약을 먹은 이후의 세상은 그 "너무너무"가 사라진 세상입니다. 너무너무 웃겨서 웃음도 많았고, 너무너무 슬퍼서 잘 울었고, 너무너무 맛있어서 잘 먹었고, 너무너무 멋있어서 사랑에도 금방 빠졌는데 말입니다. 저의 의지로 술이나 음식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만, 제 인생에서 "너무너무"가 사라진 것은 조금 아쉽습니다. "너무너무"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을 깊이 있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너무너무"인 채로 살면 안 되는 걸까요?


조울증은 제 인생에서 형벌이었을까요? 축복이었을까요?

저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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