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해가 안 갑니다.

여행 아홉째 날의 기록(2025.1.21. 화)

by 방구석도인

오늘은 현지에서 섭외한 한국인 가이드와 멀리 다른 도시로 나가는 날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할 때 모든 투어를 '마이리얼트립'앱에서 예약을 했는데, 이는 나의 실수였다. 캄보디아 여행 카페를 보니 한국어 사용 가이드를 직접 섭외하는 게 더 저렴할뿐더러 그룹이 아닌 단독으로 다닐 수 있다. 진작 알았으면 모든 일정을 한국어 가이드와 함께 했을 텐데 많이 아쉬웠다. 영어 가이드 투어는 저렴했지만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어서 유적지에 대한 깊이 있는 감상이 어려웠다. 앱에서 예약한 한국어 가이드 투어는 아주머니 무리들 때문에 좀 불편했다. 물론 그분들은 매우 매너 있는 분들이었지만 혼자 여행하는 묘미를 즐기기 힘들었다.


이런저런 아쉬움으로 인해 계획에도 없는 한국어 가이드 투어를 급히 신청했다. 인근 유적지는 이미 한 번 돌았으므로 새로운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하자, 숙소에서 두 시간가량을 이동하는 '프레아 위헤어' 지역의 코케 유적지로 안내했다. 이곳은 관광객 자체가 없지만 한국인들은 거의 없으며 주로 프랑스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였다. 앙코르 사원 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는데, 인적 드문 조용한 곳이라고 하니 기대되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주변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한 건물을 지나며 결혼식장이라고 소개를 해주길래 캄보디아 인들은 주로 몇 살에 결혼하냐고 물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17세~18세쯤에 하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스물대여섯에 한다고 하였다. 한국은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안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자, 그는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캄보디아에서는 무조건 결혼부터 한다고 했다. 결혼부터 하고 대학을 가고, 결혼부터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부터 하고 돈을 모으고, 결혼부터 하고 집을 산다고 했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캄보디아 인들 이야기에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대학을 졸업한 후 결혼을 하고, 취업을 한 후 결혼을 하고, 돈을 모은 후 결 혼을 하고, 집을 산 후 결혼을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사는 삶을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걸까. 언제부터 이렇게 사는 삶이 당연한 것이 된 것일까. 왜 우리는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고 돈을 모으고 집을 사는 일련의 중대사를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할 생각은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갖춘 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려 하는 걸까.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먹고, 젊음은 지나간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설렘과 끌림은 거세당한 채,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며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혐오한다. 결국에는 남자는 다 똑같다며, 여자는 다 거기서 거기라며 사랑이 아닌 조건을 더 우선하는 결혼을 하게 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왜 나는 '무조건 결혼부터 하고 본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걸까?


코케 유적지는 정말로 한적하고 고요했다.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프랑스인으로 보이는 그룹이 빠져나가자 우리 둘만 남아 있었다. 무조건 결혼부터 한다는 남자와 힘든 삶이 자신 없어 결혼부터 회피하고 보겠다는 여자는 잠시 같은 시공간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의 삶은 거꾸로 흐른다. 결혼부터 하고 돈을 모으고 집을 산 남자와 임용고시에 실패해서(꼭 이것만이 이유는 아니지만) 결혼을 안 한 여자, 누가 더 행복할까.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이제 대한민국에는 정답이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 이건 아니다. 결혼 연령은 점점 늦어지고 아이는 점점 낳지 않는 이런 삶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도 결혼부터 해보면 어떨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