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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세상과 나.

여행 여덟째 날의 기록(2025.1.20. 월)

by 방구석도인

오늘은 프놈쿨렌 국립공원 투어가 있는 날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앙코르 유적지 위주로 둘러보는데 나는 일정이 길어서 가능한 선택이었다. 영어 가이드가 진행하는 그룹 투어여서 오늘은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할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차에 타보니 아무도 없었다. 신청자가 나밖에 없다고 한다. 비용이 고가라 한 명만 진행해도 이득인지라, 한 명으로도 투어는 진행했다. 그룹 투어를 신청했지만, 운 좋게 프라이빗 투어가 된 셈이다.


숙소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가량을 이동하였다. 산이라고 해서 힘들까 봐 걱정했는데 대부분의 이동을 차로하고 걸어야 하는 구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운전기사와 가이드, 나 이렇게 셋이 함께였다. 혼자 온 여행이지만 두 명의 남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되어 버렸다. 물론 기사님은 연세가 많아 보이셨고, 가이드는 내 또래로 보였으나 내 스타일은 전혀 아니어서 설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오지랖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가이드가 왜 혼자 여행 왔냐고, 남자친구는 없냐고 물었다.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남자친구는 있는지'의 질문 3종 세트는 글로벌한 관심사임에 틀림없다. 남자친구가 없다는 나의 대답에 그는 'Why'라고 되물었다. 나도 궁금하다. 왜 난 남자친구가 없는지, 그리고 왜 남편도 없는지. 내가 오히려 궁금해서 한때 점쟁이들에게 미친 듯이 물어보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나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사람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웃고 말았더니 그는 대한민국에서도 흔한 멘트인 '그럼 캄보디아에서 한 명 만들어'라고 말했다.


러시아로 여행 간다고 하면 러시아 남자친구 만들어 오라고, 일본으로 여행 간다고 하면 일본 남자친구 만들어 오라고 사람들은 농을 던지곤 했다. 한국에도 없는 남자친구와 남편이 외국인들 있을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난 키 큰 남자가 이상형인데 캄보디아인들은 대체로 키와 체구가 작다. 남자들이 내 키와 비슷하거나 대부분 나보다 작았다. 가이드는 나보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계정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둘 다 없다. 그는 자신은 인스타그램이 있으니 한국 가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 내 나이를 묻길래 말해주니 나보고 어려 보인다고 했다. 그는 35살이라고 했는데, 한 42살쯤으로 보였다. 한국인들이 확실히 동안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국인들은 한국인들보다 보통 5~7살 정도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


쿨렌산의 사원과 작은 폭포, 큰 폭포 그리고 절벽을 보았다. 여행 다닐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상은 참 아름답다. 거대한 나무들과 울창한 나뭇잎들 그 사이로 비추는 햇살. 스스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며 흘러가는 강물, 열정적으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 땅바닥에 배와 얼굴을 묻고 낮잠을 자는 강아지들. 어떤 명가수도 재연할 수 없는 노래를 들려주는 새들.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나. 나는 사람들과 세상 속에서 온전히 하나 된 행복을 느꼈다. 폭포에서 가족들과 함께 수영을 하는 사람들, 연인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는 커플들, 걱정 한 점 없는 표정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가이드는 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데려다준다고 얼마든지 말하라고 했다. 그는 내게 톤레 호수에 일몰을 보러 같이 가자고 했으나, 이미 다녀온 곳이라고 말했다. 그 뒤로 차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실제로 나는 조울증 약 부작용으로 며칠 잠을 설쳐서 컨디션이 안 좋고, 매우 피곤했다.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두시쯤 숙소에 도착해서 바로 세수를 하고 잠들었다. 자느라고 저녁 식사도 놓쳤다. 그동안 못 잔 잠이 밀려오는지 깼다가 다시 잠들기를 몇 번 반복하며 다음날 아침까지 잠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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