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제: 두 개의 가치관이 부딪친 갈등 스토리텔링
‘취향’을 사전에 검색해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 방향을 감지하지 못할 때 ‘아무거나’라는 말이 툭 튀어나가는 걸까. ‘취향이 없다’는 부끄러운 자기 고백처럼 들린다. 그 고백은 내 고유한 방으로 들어가게 해줄 열쇠의 요철을 뭉툭하게 만들어버린다. ‘나’를 잃어갈수록 더욱 찾고 싶어진다.
7년 전,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을 앞둔 무렵이었다. 과 동기들 대부분은 의,치전원을 지원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학점을 끌어올리느라 애쓰고 있었다. 혹은 이력서에 한 줄로 추가될 스펙을 쌓으러 다녔다. 나도 ‘아무거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무엇을 하고싶은지 몰라 떠돌았다. 무작정 기숙사 방을 나와 발이 닿는 대로 걷곤했다. 종착지는 주로 영화관이었다. 난 어두운 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2시간짜리 세상 속에서 가장 자유롭다고 느꼈다.
그날도 아마 학교 수업에 가지 않았을 거다. 한 시간 조금 넘게 걸었을까. 익숙한 듯 이수역 어느 예술 영화관에 들어갔다. 게시판에 걸려있던 한 포스터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해 폭염이 시작될 때쯤 난 태양이 강렬히 내리쬐는 곳으로 향했다. 포스터에 이끌려 간 곳은 충무로였다. 충무로역 지하철에서 내리면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오랜 애정이 담긴 전시물이 줄지어 있다. 그 역사를 따라 쭉 걷다 4번 출구로 나오면 낡은 영상센터가 있다. 각종 촬영 장비들이 뿌옇게 먼지 쌓인 채 엉켜 있는 곳. 차마 쓰레기통에 넣지 못한 영화 실습 파일들이 컴퓨터 화면에 가득한 곳. 난 그곳에서 단편영화제작 워크숍에 참여했다.
그 워크숍은 시나리오, 촬영, 편집 등 모든 과정을 공동 제작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첫번째 실습과제로 각자 써온 트리트먼트 중 한 편을 골라 5명이 한 조를 꾸렸다. 우리 조는 내가 작성했던 트리트먼트를 고른 사람들로 꾸려졌다. ‘완벽하려는 집착으로 인한 자승자박’을 주제로 한 A4 한 장도 채 안되는 글이었다. 조가 꾸려진 후로 그 글은 조원들에 의해 잘게 해체되고 수차례 덧붙여지고 다시 찢기곤 했다. 촬영 조건은 미션처럼 떨어졌다. 장소는 동국대학교 한 강의실. 촬영 시간은 딱 4시간. 따로 배우를 섭외할 시간도 없었다. 우리 중 한 명이 주인공을 맡았다. 유일한 배역이었다. 영화는 자연스레 원맨쇼 무성 영화 컨셉이 되었다. 나름 심오하다고 자부했던 내 트리트먼트는 ‘결벽증 학생이 무아지경으로 교실을 청소하는 콘티’로 재탄생했다. 촬영장에서 담당할 역할을 나눴다. 조원들은 각각 촬영감독, 미술감독, 스크립터, 배우, 나는 트리트먼트의 주인이었다는 이유로 총감독을 맡았다.
촬영 날, 우린 약속이라도 한 듯 목이 늘어난 시커먼 티 쪼가리를 입고 왔다. 버릴 옷을 골라 입은 것이다. 우리는 땡볕에 조명, 카메라, 마이크, 모니터 등 각종 장비를 어깨에 나눠 지고 허리는 굽은 채로 동국대학교 한 강의실로 걸어갔다. 뜨거운 햇빛을 삼킨 장비들이 몸을 깔아뭉갤 것 같았다.
촬영을 맡은 친구는 영화 경험이 꽤 있었다. 그의 주도로 강의실은 순식간에 촬영장으로 변했다. 긴 선으로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 앞이 내 자리라고 했다. 내가 할 일은 ‘레디 액션’과 ‘컷’을 외치는 것이었다. 부담은 됐지만 제일 간단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심호흡 했다. 땀에 젖어 잉크가 다 번진 콘티만 손에 꼭 쥐었다.
“레…레디 액션!”
모두가 숨죽였다.
배우, 바닥에 붙은 껌을 펜으로 긁다가 안 떨어지자 손톱으로 긁어댄다. 끼이익 끼이익.
카메라 감독, 까매진 손을 클로즈업한다.
“컷!”
“어때??” 모두 나를 바라봤다.
뭐가 어떠냐는 말인가. 난 눈만 끔뻑거렸다. 등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 순간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식당에서 메뉴 하나 고르지 못해 추천메뉴를 뒤지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늘 객관식 문제의 정답만 찾다가 정해진 답이 없는 서술형 난제를 만나 머리가 하얘졌던 날이 떠올랐다. 여긴 메뉴판도 답안지도 없는 곳이었다. 모니터 가운데에 잡힌 껌처럼 바닥에 납작하게 늘러 붙고 싶었다. 그 뒤로도 조원들의 수십 차례 “어때?” 공격이 이어졌다. 나는 점점 화면보다 카메라맨의 얼굴을 더 유심히 살폈다. 난 그가 미세하게 고개를 갸우뚱하면 “다시!”를, 입꼬리를 살짝 씰룩거리면 “오케이 컷!”을 잽싸게 외쳤다. 눈치로 무사히 첫 실습과제 촬영을 마쳤다. 조명 열기에 모두의 얼굴이 벌겋게 익어 있었다. 촬영장을 원래 강의실 모습으로 돌려놓았지만, 우리의 땀냄새는 짙게 배어 있었다.
다음날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비를 뚫고 온 두 명만 센터 편집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케이 컷들을 이어 붙이고 배경음악을 넣는 등의 후반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수백 개의 영상 조각들을 앞뒤로 넘겨보았다. 매끄럽게 붙는 컷이 하나도 없었다. 초점만이라도 맞은 컷들이 나오면 별표를 달아 건져냈다. 조명 빛은 햇빛과 섞여 단 한순간도 같지 않았다. 톤을 맞추다 보니 밝았던 강의실은 어느새 음침한 보랏빛이 되어있었다. 마이크를 타고 들어간 우리의 잡음들은 웅장한 클래식 음악으로 덮어버렸다.
힘 없는 오케이 사인에 시시각각 달라지는 주인공 캐릭터는, 눈치보다 개성을 잃어버린 내 모습 같았다. 영문도 모른 채 ‘오케이 컷’을 외쳤던 초점이 나간 컷들은, 남의 시선만 의식하다 저질러버린 인생의 크고 작은 실수들 같았다. 어딘가 끌리지만 튄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컷들은, 새로운 시도가 두려워 외면해버린 미련들 같았다. 카메라에 담아온 그 어설픈 조각들이 다 내 인생 같았다. 하나로 이어져 흘러갈 수 있도록 붙이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리 매끄럽게 붙이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자국 같은 것이 남아있었다. 애를 쓸수록 자국은 선명해졌다.
며칠 뒤 우린 센터에 모여 완성작을 감상했다. 삐걱거리며 간신히 재생되는 우리의 첫 실습작. 눈치만 있고 주관은 없는 내가 발가벗겨지는 시간이었다. ‘알(아서).잘.딱.깔(끔하고).센(스있게)’ 눈치 보는 것이 현대인의 미덕 아니었던가. 유별난 짓은 곧 무리의 뒤에서 잘근 씹어지는 껌. 그 사이에서 내 취향을 점검하며 색깔과 향을 주변에 맞춰가던 지난날들. 5분 동안 재생된 것은 나를 잃어가던 바로 그 모습들이었다. 고집부리지 않는다고 해서 공동작업이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조원들의 엉뚱한 고집이 남아있는 장면에선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봉준호감독 영화에서도 난데없이 인물이 자빠지는 ‘삑사리’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면서 마음이 뜨끈해지지 않던가. 취향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면 누군가의 마음 깊숙한 곳에 닿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난 습관처럼 ‘아무거나’라는 말이 나가려 하면, 마음이 어디로 기울어 있는지 살핀다. 마음에 현미경을 대보기도 한다. 미세한 경사라도 파악하려는 집념 같은 거다. 그 해 충무로에서 다짐했다. 나를 잃어가는 순간에도 나를 발견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6년 동안 그래왔듯 내일도, 답이 정해진 상사의 질문에 원하는 답을 해줄 것이다. 이유도 모르는 채 시키는 일을 또 허겁지겁 하고 있을 것이다. 심장이 파랗게 굳어가는 날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내가 소소하게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나로 살게 할 것을 안다. 말랑해진 심장에 다시 빨간 것이 흘러 심장은 서서히 보랏빛이 될 것이다.
오늘 퇴근 길은 셔틀 버스를 타지 않고 발이 닿는 대로 걸어본다. 내가 좋아하는 길로 공원을 가로질러 가본다. 이 순간 듣고 싶은 노래를 내 안으로 흘려본다. 천천히 나를 발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