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향하는 여정

by mingD

지난달, 구례로 1박 2일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한 번쯤은 직접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었다. 일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빡빡했다. 모든 활동은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지만 난 예불, 공양, 차담, 명상 프로그램 모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체험했다. 마치 곧 출가할 사람처럼 진지하게 임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명상 시간이었다. 스님께서 수행으로써의 명상은 ‘알아차림’이라고 하셨다. 스님은 우리가 어떤 감각에 오롯이 집중할 때 이런저런 잡념들이 떠오르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 순간 ‘뚱’ 차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수백 가지의 명상법 중에, 스님께서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듣는’ 명상법을 알려주셨다. 마음속으로 자기 이름 석자를 외치는 소리를 내면으로 듣는 명상이다. 그렇게 이름을 계속 부르면서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들어내는 훈련이었다.


“탁, 모두 누워서 명상 시작하겠습니다.”
마음속으로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OOO, OOO, OOO,… 뚱... OOO… 뚱..’
내 이름을 10번도 채 부르기 전에 어느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도 시도 때도 없이 내 이름 석 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잡념들을 쫓으려 무수히 많은 ‘뚱’을 외쳐댔다. 내 안에 시끄럽게 조잘대는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도둑맞은 집중력에 좌절했고, 그동안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들에 휩쓸려 살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스님께서는 일상 속에도 수많은 명상의 기회가 있다고 하셨다. 걸을 때, 밥 먹을 때, 자기 전 누워있을 때 등 어떤 상황이고 그 순간에 오롯이 감각을 집중해 보면 그게 곧 명상이라는 것이었다. 난 ‘알아차리고, 뚱 차버리기’를 일상 속에서 훈련하리라 다짐하며… 어느새 코를 골고 있는 나를 알아차렸다.


템플스테이가 끝나고 속세로 돌아왔다. 다른 생각에 빠져 흘려보냈던 일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렇지 않은 순간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내 취향을 알고 감각에 섬세해지고 싶다면서도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채 살고 있었다. 이를테면, 난 언제부턴가 양치를 한 줄도 모르게 입을 헹구고 있었고, 샤워를 하면서도 샴푸는 했었는지 헷갈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고, 출근길에 대한 단 하나의 기억도 없이 회사에 도착해 있었다. ‘양치 명상’, ‘샤워 명상’, ‘출근 명상’이라 이름을 붙였다. 잡념이 떠오르면 마음속으로 ‘뚱’ 차버리려고 노력하니 온 일상이 ‘뚱’으로 가득 찼다.

어떤 생각들은 발목에 철썩 늘러 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나를 갉아먹는 것 같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기 시작하면 걱정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불안은 또 다른 걱정거리를 데려왔다. 문득 떠오르는 이미 지나버린 일에 대한 후회는 나를 과거로 끄집어 당겼다. 내 안의 생각들을 많이 알아차리게 될수록 내면의 발길질은 거세졌다.


명상은 나로 향하는 여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물론 노력한다고 해서 잡념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지만, 온 감각이 마비된 채 그것들에 질식되지 않게 해 준다. 그렇게 나를 알아차리고, 또 나를 만나기 위해 매일의 연습을 계속할 뿐이다.


( + 아, ‘양치 명상’, ‘샤워 명상’, ‘출근 명상’으로 소소하게 달라진 것이 있다. 이젠 양치할 때 오른쪽 아래 어금니만 3분 동안 닦는다거나 다 헹군 머리에 다시 샴푸 거품을 뒤집어쓰는 일은 줄었다. 그리고 출근길엔 신호를 더 기다리더라도 큰 나무들이 줄지어있는 한적한 왼쪽 길로 가는 걸 더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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