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혼자 부국제 가요? 영화 진짜 좋아하나보다.”
올해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맞추어 연차를 썼다. 밤 10시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며칠간 잠을 잘 못 잔 탓인지 몽롱했다. 짐을 풀고 일단 침대에 누웠다. 이번에 유독 해운대의 소금기를 머금은 꿉꿉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침대 커버의 얼룩이 눈에 띄었다. 그 좁은 곳에서 날 구해준 것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환불을 망설였던 ‘미드나잇 섹션’ 영화표였다. 자정에 시작해서 6시간 꼼짝없이 영화관에 갇히는 이 짓을 또 하는구나. 난 왜 이 파괴적인 부산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
자정에 딱 맞춰서 상영관에 들어갔다. 처음 영화제에 갔던 대학교 1학년 땐, 영화 시작 2시간 전부터 미리 영화관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촌놈의 기대와 달리 평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어 실망하기도 했었다. 이제 익숙해진 만큼 극장 관광 시간은 짧아졌다. 처음 부국제에서 본 영화도 미드나잇 패션 섹션이었는데, 그땐 눈을 떴을 때 이미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관객들이 박수를 치는 낯선 광경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영화제는 영화제구나.’ 이번엔 6시간 동안 영화를 온전히 집중해서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졸다 깨다 반복했지만 아무 일 없던 듯, 엔딩 크레딧만큼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여유롭게 박수를 치고 나왔다.
이어서 예매해 둔 아침 9시 상영 영화가 있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시네필들의 기대작’으로 입소문 난 3시간 반짜리 영화였다. 숙소에 가서 씻기만 하고 근처의 국밥집으로 갔다. 처음 혼자 부산에 갔을 땐, 살면서 혼밥은 버거킹이 전부였던 내게 남 눈치 안 보고 혼자 국밥 한 그릇 먹는 여행자가 그렇게 자유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나도 이제 제법 그 바이브가 나온다. 정신 차려보니 뚝배기를 기울여 마지막 국물까지 긁어내고 있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다시 극장에 갔다. 여지없이 30분이 넘어가니 졸음이 쏟아졌다. 컷들이 마구 튀기 시작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눈을 두세 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아메리카노를 크게 한번 들이켰다. 스크린 속에서 주인공은 고난을 겪고 난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잠과의 사투를 벌였다. 그러다 보니 이겨내는 순간이 왔다. 그 후론 꽤 집중해서 영화를 봤다. 중간에 아주 뜬금없이 기괴한 19금 씬이 나오기도 했는데, 괜히 민망해서 실소를 터트리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자 극장이 환해졌다. 바로 이어서 감독과의 GV가 시작되었다. 질문이 있는 관객은 손을 들라고 했다. 난 쥐 죽은 듯이 있었다. 앞줄의 한 노인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영화 용어를 줄줄이 나열하더니 내가 실소를 터트렸던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질문을 이어 나갔다.
“저는 그 씬이 이 영화의 아주 핵심 같았습니다. 포르투갈과 브라질 역사 (…) 신 식민지 지배방식에 대한 상징 같기도 했고요.” 너무 과잉 해석이자 허위의식 아닌가. 난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지으며 다른 관객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데 질문에 대한 통역이 끝나자, 감독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의도에 정확히 맞는 해석이라고 했다. 그 씬은 여러 겹이 쌓인 아주 복합적인 층위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한동안 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른 채 멍해졌다. 내가 과연 이 영화를 봤다고 할 수 있을까. ‘시네필을 위한 영화’에서 낙오된 것 같았다.
씁쓸한 기분은 극장 밖을 나선 후로도 한동안 이어졌다. 괜히 영화에 대한 평도 다시 찾아보고, 포르투갈 역사에 대해서도 한참을 찾아봤다. 이 영화가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말이다. 시네필이 되고자 하는 몸부림 같았다.
휴가를 다녀오니 직장 동료들이 영화제는 어땠냐고 물었다.
“영화제 가면 어려운 예술 영화 보고 그런 거죠? 영화 진짜 좋아하는 사람만 갈 수 있겠다.”
10년 전 혼자 부국제를 처음 갔을 때 사람들을 보던 내 시선이 떠올랐다. 실상 나는 영화를 보다가 조는 시간이 더 많았고, 내용은 쥐뿔도 이해 못 했다는 걸 누가 알까. 난 그저 부산에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취향이 뚜렷하고, 자유롭고, 특별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차피 자러 갈 영화를 부산까지 가서 보는 이유가 고작 이거였을까.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국밥 한 그릇이 더 진짜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