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결혼을 앞두고 '이 남자다.' 라는 생각이 언제 들었는지..
첫눈에 전기가 찌릿찌릿 통했는지...
정말로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는지...
내 경우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월드컵이 한참이던 5월 25일에 처음 만나 10월 26일 겨우 다섯 달 만에, 그것도 서울과 부산 장거리 연애로 손꼽을 만큼 만나고 결혼을 결정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 남자의 어떤 매력이 나를 결심하게 했을까?
흔히들 말하는 집안끼리 잘 아는 중매쟁이의 소개로
처음 만나기로 한 날,
전화번호를 줬으니 전화가 올 거라는 말과는 다르게 만나기로 한 당일날 오후까지도 전화가 없었다.
약속이 깨졌나 싶은 마음에 못다 한 일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동료들과 저녁을 주문하는데 5시 넘어서야 전화가 왔다.
"몇 시에 만날까요?"
뭐 이런 예의 없는 남자가 다 있을까 어이가 없었다.
"오늘 만나는 건데 지금 연락 주신 거예요?"
"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여유 있는 목소리에 화도 나고 도대체 어떤 남자인지 궁금한 마음에 약속을 정하고 만났다.
첫인상이 너무 마르고 뾰족한 모습이라 날카로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부드럽고 의외로 대화가 잘 통했다. 처음 만난 것 같지 않게 계속 대화가 이어지고 커피로 시작해 함께 밥을 먹고 드라이브까지 긴 시간을 함께 하고 헤어지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내일 뭐 타고 가세요?
제가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예의 없는 남자 얼굴 보러 나온 것 치고는 어이없는 말이 나왔다.
"정말요? 진짜 데려다주실 거예요?"
자연스레 다음날 다시 만나게 되었다.
"태워다 주셔서 너무 감사한데 제가 밥 사도 될까요?"
"좋죠.. 뭐 드시고 싶으세요?"
한참을 생각하던 그 남자는
"저... 진짜 먹고 싶은 게 있긴 한데..."
"뭐예요?"
"돼지국밥이요.. 옛날에 맛있게 먹었던 게 생각나서..
부산에 오면 돼지 국밥이 늘 먹고 싶었거든요.."
"아~~ 그게 뭐라고... 돼지국밥 먹죠"
사실 나는 부산 사람이고 부산에 29년째 살고 있었지만 돼지국밥을 먹은 횟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돼지국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왠지 그 남자가 먹고 싶다는 것을 함께 먹어주고 싶었다.
먹는 내내 내 국밥은 진도가 안 나갔지만 너무나 맛나게 먹는 그 남자가 미안해할까 부지런히 먹고 또 먹었다.
국밥을 다 먹은 그 남자는 너무 맛있는 식사였다며 흐뭇하고도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같이 국밥 한 그릇 먹었다고 이렇게 행복해하다니 보고 있는 나도 흐뭇해졌다.
돼지 국밥집을 나서며
"맛있는 국밥을 함께 해주셔서 저도 뭐 하나 사드리고 싶은데..."
그 남자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더니 금은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얼떨떨해하는 나에게 반지를 골라보라고 했다.
만나기로 한 날 저녁때돼서야 연락하는 남자..
만난 지 이틀 만에, 두 번째 만남에 반지를 골라보라고 하는 남자..
나도 어제의 연락 늦음에 꽤 심해하던 마음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졌다고 해야 하나?
나도 29살의 보통 여자라 반지의 의미를 모를 리 없지만 별 스스럼없이 반지들을 껴보며 마음에 드는 반지를 골랐다.
"오늘부터 우리 사귀는 겁니다"
금은방을 나오면서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여 답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생각해도 뭐에 씐 것처럼 먼저 데려다준다고 말하고, 마음에 드는 반지를 고르고, 사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이 모든 일이 두 번째 만남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종이 울리지는 않았지만 뭔가 처음부터 인연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돼지국밥이 맺어준 인연인가?
아무튼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