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통닭

by 권진희

우리 아빠는 전원일기에 나오는 김 회장처럼 우리 동네를 아우르는 '권 회장'이었다.

모르는 거 없고, 모르는 사람 없고..

동네에서 사건이 터졌다 하면 다들 "권 회장~~"하고 아빠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은 늘 동네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약 건재상을 하시다 보니 가게와 집이 문 하나로 연결되어 가게를 통해 집으로 들어가는 구조라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들어서면서부터 동네 어른들께 인사를 하느라 계속 고개를 조아려야 했고 어른들의 모든 관심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덥제? 핵교 댕겨오니라 힘들었제?"

"공부는 잘 하제? 몇 등하노?"

"아이구야~~공부하느라 앉아만 있었는갑다...다리가 독립기녕관 기둥이네~~"

"여자애한테 독립기념관이 뭐꼬?"


지금 같으면 성희롱이니 뭐니 파르르 할 텐데 그때만 해도 어른들의 악의 없는 관심이려니 하고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동네 어른들이 자주 모이다 보니 하루는 옆집 아저씨가

"권 회장~~ 내가 오늘 낚시를 갔는데..."

이러고 생선을 내밀면 우리 아빠는 횟집 사장보다 더 멋진 솜씨로 회를 뜨고 엄마는 매운탕을 끊여 동네잔치를 했다.

또 다른 날은 "권 회장~~ 우리 형님이 배에서 내리면서 이 마구로(참치)를 줬는데.... 이거 원 어째 묵어야 되노?"

그러면 우리의 권 회장은 망설임도 없이 약한 소금물에 살짝 녹여 어찌나 맛깔나게 썰어내는지 또 동네잔치가 되었다.

어떤 날은 삼겹살파티, 또 어떤 날은 정구지찌짐파티...


한참 시간 지난 후 결혼식 날 잡고 집에 놀러 온 우리 신랑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올 때마다 사람 그득그득, 그리고 올 때마다 파티에 인사를 드릴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지... 충격적이었다고 지금도 말한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우리 권 회장님은 늘 인기가 많았고 그래서 늘 바쁘셨다.


부산시 새마을회장이라는 직함도 가지고 계셔서 회의도 많고 봉사활동도 많이 가시고 연수도 자주 가시고 회식도 매일이고... 동네잔치도 해야 하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술도 어찌나 많이 드시는지 아빠와 지인들이 드신 술병을 가게에 팔면 그 수입이 짭짤했다.


이렇게 바빴지만 아빠는 우리 자식들에게 끔찍했다.

어디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꼭 그 다음번에 데리고 가서 맛 보여주고 데리고 가기 힘들면 사장님께 억지를 부려서라도 포장을 해오곤 하셨다. 특히 술을 드신 날은 자식들에 대한 애정이 더 솟구치시는지 꼭 손에 뭐라도 들고 들어오셨다.


그래서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오시는 밤엔 일찍 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괜스레 늦게까지 자지 않고 아빠를 기다렸다.


어느 날 밤...

아빠를 기다리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술 취한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후다닥 일어나서 현관으로 나갔더니 아빠 손엔 누런 봉투가 들려 있었다.

누런 봉투 속엔 하얀 습자지에 싸인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닭이 들어 있었다.

이미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지만 그 통닭을 먹겠노라고 둥근 상에 하나둘씩 모여 앉았다.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시던 아빠는 잠에 취해 못 일어나는 셋째 동생 곁으로 가서

"일어나 봐라~아빠가 통닭 사 왔다"하시곤 간지럼도 태우고 엉덩짝도 때리고... 결국 깨워서 온 가족을 불러 모았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리곤 다리를 하나씩 뚝 뚝 떼서 "아나~~이거 묵어라" 하고 건네주셨다.

자정 넘은 시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엄마의 "미쳤데이...이 시간에 이게 뭔 짓이고?"하는 지청구를 들으며 먹었던 통닭맛은 오십 넘은 지금도 생각난다.


지금도 나는 조각조각 나눠 튀긴 닭보다 뼈를 다 발라낸 먹기 좋은 순살보다 통닭을 좋아한다.

그 어떤 맛을 첨가한 치킨보다 그냥 기름에 통째로 넣고 튀긴 옛날통닭이 좋다.

배달앱에서 '옛날통닭'만 찾아 주문해도 옛날 그 맛이 안 난다.

통닭을 먹는 나를 향해 세상 흐뭇하게 웃어주는 아빠의 미소가 그립다. 누런 통닭봉지를 품 안에 안고 들어오시면서 내 이름을 크게 불러 주시는 아빠의 목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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