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C Sep 24. 2022

20.기체결함#1 (뱅기야 아프지 마!)

하와이에서의 기록

잊고 있었던 숨 막히던 시간 중에는 기체결함으로 인한 비정상상황들도 빼먹을 수 없다.


아주 정상적이고 평온하게 손님들의 보딩까지 하고 있는 상태였다.


도착 편 지연으로 인해 공항소방대에 연락하고 기장님의 승인을 구한 후에 급유 중 보딩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계획된 급유량을 약간 남겨놓은 상황에서 계기판의 숫자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기장님은 “이상하네 왜 OFP(Operational Flight Plan, 비행계획서)에 명시된 급유량이 들어가지 않을까.  무슨 문제가 있나?”라고 의아해하셨고, 나 역시 초조하게 조종석의 계기판을 들여다보며 궁금해하는 사이 손님들은 모두 탑승을 완료했고, 여전히 급유는 완료되지 않았다.


최초에는 급유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압력이 낮아 기름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고 추정되었기에 급히 급유차 한 대를 더 요청하여 왼쪽 날개에 한대 오른쪽 날개에 한대를 세워 급유 호스를 양쪽으로 연결했다.


다행히 숫자가 약간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던 급유 계기판은 이내 다시 멈추어 섰다. 속이 타들어 갔다.


이미 한 시간의 지연이 발생하고 있었고 종합통제의 실무자 전화는 빗발치며 위탁정비사와 정비통제 당직자 간의 통화와 미주지역본부 운항관리사의 이런저런 조언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제발 그냥 나갔으면 좋겠다.’라는 나의 철없는 바람과는 달리 기장님은 기체 결함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비행이 불가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언급을 하였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상황...


AOG(Aircrft On Ground, 항공기가 비행이 불가능한 상황을 뜻하는 정비용어)만은 절대 안 되는데.


그때 뒤에서 휴식을 취하던 또 다른 부기장(3 Pilot. 기장 1명, 부기장 2명 편조, 1명은 항로기장으로 항로 중 기장 좌석에 위치한다. 물론, 이착륙은 무조건 기장, 부기장 조합으로 하게 된다.)이 조심스레 매뉴얼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제가 임무 부기장도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아마도 항공기 급유탱크안의 밀도 때문에 더 이상 연료가 들어가지 않는 것 같은데요.” 미주지역본부의 운항관리사와 통화를 다시 시도했고 그날 따라 무더웠던 하와이의 더운 날씨로 인해 급유탱크내의 공기가 팽창하여 애초부터 들어가지 못할 양의 급유량이 산정되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레 언급되었다.


운항관리사와 기장님의 통화가 길게 이어졌고, 비행기는 이제 거의 두 시간 넘게 지연되고 있었다. 슬슬 손님들은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캐빈승무원들도 지쳐가는 상황이었지만 프로답게 손님들을 응대하고 있었고 다행히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였다.


이윽고 기장님이 지점장을 불렀다. “정비사와 이야기 나누다 보니 밀도 문제가 맞는 것 같네요. 급유량을 다시 계산중이고요. W&B만 다시 작성해주면 출발할게요.”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으나 약 2시간 반 정도 지연되어 운항/캐빈승무원에게 인사들 드리고 큰 숨을 내뱉으며 도어클로즈를 도와드렸다.


그 사건 이후부터는 밀도를 계산해서 급유량 체크를 하는 절차를 지점도 같이 확인해야 했고 현지 운항관리 조업사에게도 재교육을 하는 등 또 하나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생겼지만 급유 관련 큰 지식을 얻은 터라 한편으로는 기쁜 마음도 생겼다.


또 한 번은 역시나 손님 보딩이 완료된 상태에서 EDTO(Extended Diversion Time Operation. 회항 시간 연장. 엔진이 2개인 항공기가 주변 180분 내에 착륙할 공항이 없을 때 필요한 인증) 부품의 결함 발생 건이었다.


오직 바다만이 펼쳐진 태평양을 2개의 엔진으로 건너려면 EDTO 점검이 완료된 항공기로 운항을 해야 하는데, 관련 부품에 결함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설마 했는데 왼쪽 엔진의 덮개(Cowl)를 열었고 백발의 할아버지 조업 정비사는 느긋했지만 신중하게 엔진의 이곳저곳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비 상황으로 인한 AOG가 예상될 때는 만약을 대비해서 사전에 준비를 해 두어야만 한다.


늘 정비 상황이란 확답이 불가능하여 수정 작업을 수차례 진행하다가 뒤늦게 최종 결정되기에, AOG 결정 후 대처를 하게 되면 불만 승객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고성이 터지고 수백 명의 승객들이 둘러싸며 각자의 요구 상황을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지점장 포함 3-4명의 직원이 손님 응대, 여정 변경, 재발권, 호텔/셔틀버스 수배, 밀 쿠폰 제공, 보상 정책 설명, 면세품 반납, 위탁 수하물 처리, 항공기 정비 상황 확인 등의 수십가지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해야만 하며 전 직원이 땀에 절어 식사는 커녕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밤을 새워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그러고도 운 없으면 손님들에게 둘러싸인 우리들의 모습이 모자이크 되어 뉴스에도 나온다.


특히, 미국계 항공사는 AOG가 발생하더라도 대다수의 승객들이 이해를 하고 발길을 돌리지만, 안타깝게도 다혈의 민족인 한국 승객들은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시작한다. 


초조한 얼굴로 엔진 쪽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오늘의 캐빈매니저가 하시는 말씀..


“저기요. 정비사 좀 불러주세요.” “네?” “38K 좌석의 등받이가 이상해요. 그거 안 고치고 출발하면 가다가 손님 불만이 심할 것 같아요.” “정비사가 지금 바쁘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약 3분 후 “지금 불러주세요.” “기다리세요.” 또 약 5분 후 “불러주세요.” “저 밑에서 엔진 카울 열고 내부 점검하는 거 안 보이세요? 저거 못 고치면 오늘 비행기 못 나갑니다.”


여전히 그 캐빈매니저는 끈질기게 쳐다보았다. 반팔 흰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던 나는 옆구리에 총 대신 워키토키를 차고 있었으며 정비용 렌치나 드라이버 같은 공구는 집 창고에나 있었다.


스토커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캐빈매니저에게 지고 말았다.

 

그러나 엔진 결함을 수정하고 있느라 바쁜 정비사를 부를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직접 들어가 뒤쪽 신혼여행객의 남편이 앉아 있는 좌석으로 향했다. 그 승객은  좌석의 등받이 부분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자동으로 젖혀지는 상황에서도 “괜찮아요.”를 연발하며 부인 대신 자기가 그 자리에 앉아 가면 된다고 했다.


이렇게 매너 좋으신 손님은 분명 나중에 진짜 정비사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 줄텐데 캐빈매니저는 왜 저렇게 안달을 할까 하며 짜증이 났지만, 항공기 문을 닫은 이후의 10시간은 오직 그 매니저가 캐빈에서 벌어지는 모든 비정상 상황을 처리하고 책임져야 하기에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일단 좌석 하단의 스펀지 방석을 떼어냈다. 그간에도 기내 청소 중에 의자 하단 방석은 수 없이 떼어 내서 직물 커버를 교체한 적이 있는데 승객들이 기체 흔들림으로 구토를 하거나, 간혹 어린아이들이 소변을 지리는 경우도 있었기에 나뿐만 아니라 거의 전 직원이 의자 커버 교체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교체할 새로운 커버가 항공기내에 탑재되어 있지 않다면 깨끗이 빨아서 엔진열로 말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 방법이라는 것도 역시 학습을 통해 알고 있었다.


좌석을 들어내자 좌석 하단 양쪽 끝에 기다란 부품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등받이를 지탱하면서 기울기를 조절하는 부품의 한쪽 부분 고리가 빠져 있는 게 문제를 발생시킨 요인으로 보였다. 자전거에서도 보던 유압식 부품이라 일견 낯익어 보이기도 했다.


해당 부품을 약간의 힘을 주어 원래 있어야 할 고리에 끼워 넣으니 금세 작동이 잘 되었다. 모두 정리하고 나오는 길에 남자분이 “아까 카운터에서도 보이시던데 혹시 항공기 정비사예요?” “아뇨. 저 공항지점장이에요. 정비사가 바빠서 제가 들어올 수밖에 없었네요. “아. 여긴 지점장이 직접 정비도 하시는군요.” "LOL.."


캐빈매니저는 그제야 감사하다는 말을 수차례 해주었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다행히 정비가 완료된 항공기 도어를 같이 힘껏 닫았다. 맘 좋게 생긴 미국 할아버지 정비사는 "직접 고쳤어? 마침 정비사 채용 중인데 너도 이력서 넣어봐"라며 웃으며 고물 밴을 타고 푸시백을 하러 떠나갔다.


 사무실로 돌아와 “얘들아. 항공기 캐빈 정비 그거 별거 아니더라”는 너스레로 직원들의 야유를 온몸에 받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날도 또 하루를 잘 넘겼다. 고맙다. 뱅기야! 일단 떠났으면 절대 돌아오지 마!

작가의 이전글 19.행복과 불행의 갈림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