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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Sep 25. 2022

21.기체결함#2 (사랑한다. 직원들아..)

하와이에서의 기록

정비 상황은 늘 가슴을 졸이게 한다.


현지에는 파견정비사도 없고 위탁 정비사를 계약한 상황이었다. 그 덕분에 정비 관련 지식도 많이 얻었다. 매번 상황이 발생하면 정비 통제의 본사 베테랑 정비사와 위탁 조업사의 외국인 정비사와의 통화가 직접 이루어졌는데, 그때마다 옆에서 통역을 돕기도 하고 직접 부족한 정비 일손을 보조하면서 항공기 계기를 하나씩 설명 듣고 질문도 하며 소중한 지식을 쌓아 다음에 이런 경우가 다시 발생하면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본사에서 파송한 호놀룰루공항서비스지점의 A330 비상용 부품은 딱 하나였다.


타이어 한 짝.


분기마다 타이어 사진을 찍어서 굴러서 도망가지 않고 잘 있다고 본사에 보고 해야 하는 일도 공항서비스지점의 업무 중 하나였다.


AOG가 발생하고 태평양 한가운데의 외떨어진 섬 안에서 ‘부품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불안감은 하와이 주재 시절 매일 같이 비행기를 바라보며 두려움에 절어 되새김질하던 느낌이었다.


하와이는 숙박비가 비싸고 호텔의 수도 적었다. 간혹 여기저기 경쟁사나 외국계 항공사의 비행기가 AOG 되어 손님 응대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건너 들으면 나 또한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도 거긴 직원이라도 여러 명이고 수십 년 된 베테랑 직원이라도 있지.


우리 지점엔 이제 겨우 6개월도 채 안된 신입직원들만 있고 지점장도 경험이 일천 한대 어찌 그런 어려운 상황을 처리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정도였었다. 다행인 건 주재 기간 중 단 한 번도 AOG가 발생하지 않았고 단지 Heavy Delay만 있었을 뿐이다.


매번 정비 상황이 발생하면 친구처럼 비행기 동체를 쓰다듬으며 ‘’ 제발. 임마! 난 너 좋아해. 너도 나랑 정들었잖아. 힘내! 잘 날 수 있어! 부탁이야.’ 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럴 때마다 이젠 친구가 되어 버린 그 비행기들이 언제나 그랬듯 기운을 차려 다시 하늘을 박차 올랐다.


힘차게 날아가는 항공기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 적도 수 없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외로움에 고개를 숙이며 한국의 부모님과 친구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한편, 집에 들어와서는 웃으면서 “빨래 너는데 당신이 띄운 비행기 저 멀리 날아가는 거 보이더라.”라고 말하는 아내에게 오늘도 벌어진 일을 수다 떨다 보면 “됐고요. 이제 그만 밥이나 드셔.”라는 핀잔도 귀 아프게 들었었다.


그래도 유일하게 기상은 도와줬다. 하와이는 활주로 상태도 좋고 제방빙(De-Icing, Anti-Icing)도 필요 없는 연중 온화한 날씨에 시정은 거의 매일 CAVOK(Cloud and Visibility is O.K,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최상의 기상 상태.)이었으며 도착시간도 오전 9시 이후라 안개 걱정도 필요가 없었다.


다만 가끔 태평양 중심부까지 올라오는 태풍이 문제였는데, 다행히 그 태풍들도 오하우 섬에 도달하기 전에 빅 아일랜드나 마우이섬 근처에서 소멸되었다. 역시나 하와이 조상님들의 삶의 터전 잡기 선견지명이란.


직원들에 관한 이야기로 하와이에서의 이야기는 끝내고자 한다.


복기해보니 부임 기간 동안 정확하게 11명의 직원이 그만두었다. 네 명의 정원이 완벽하게 유지된 적은 4년 주재 기간 동안 약 1년 여에 불과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는 나에게 지점장이 최악이라며 2년 동안 근무해왔던 직장을 유니폼을 던져버리고 나간 직원도 있었고, 퇴직 후 소송을 준비할 요량이었는지 지점의 주요 자료를 빼돌리려고 USB 메모리를 사용하다가 잊어버리고 본인이 사용하던 컴퓨터에 꽂아 놓은 채 퇴직하는 바람에 소송 자료를 날려 버린 애증의 직원도 있었으며, 부임 초기부터 의지했던 믿을만한 직원은 진급을 시켜주겠다고 설득해도 여러 현실 상 결국 퇴직 후 한국식 실내 포장마차를 차려 바쁘게 살아가고 있으며, 너무 일도 잘하고 외모도 성격도 좋았던 직원이 야반도주하듯 문자 메시지 한통만 남긴 채 남편과 본토로 이사가 버리며 퇴사를 한적도 있었고, 최악으로 일을 배우는 속도가 느려 인턴기간 3개월 안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계약 종료를 어렵사리 통보했던 직원은 그 후에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사 조업 직원을 거쳐서 정식 CBP 직원이 되는 바람에 옆구리에 찬 권총으로 나를 골목길에서 쏴 버릴까 겁이 났던 적도 있었다.


하와이에서의 좋은 기억들은 그들을 빼고는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모두 함께 웃고 울고 떠들고 가족처럼 식사를 같이 하고 술을 마시며 타국 땅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한국 사람들이었다.


호놀룰루공항서비스 지점은 점심식사를 하기가 상당히 어려워 자주 집에서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곤 했는데, 한국이었으면 구내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수다 떨고 했던 시간들을 그곳에서는 각자 싸온 도시락을 사무실 탁자 위해 펼쳐 놓고 서로 나누어 먹으며 그날 비행편의 에피소드를 화제 삼아 점차 가까운 식구가 되어 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점심식사는 한 직원이 준비한 삼겹살 파티였다.


비행편이 지연되면 먹지 못했을 뻔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정시 출발했다며 커다란 가방 안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 불판, 집게, 가위, 묵은지 등을 꺼내어 삼겹살을 사무실에서 맛나게 구워 먹으며 ‘한국에서는 꿈에도 꾸지 못할 최고의 점심 식사를 경험해 보는구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날 사무실에서 삼겹살과 함께 하지 못했던 소주를 퇴근 후 한식당에 모여 직원들에게 대접해야 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신입 시절 점심시간에 삼겹살을 준비해서 모두를 놀라게 해 주었던 직원은 내가 한번 면접에서 탈락시킨 후 다시 채용하게 된 직원이었는데, 처음부터 업무 습득이 굉장히 빨랐고 나중에는 거의 혼자서 지점을 완벽하게 운영할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했다.


한국에선 통상 직원 한 명이 공항 업무 중 한 두 개의 업무에 전문가가 되는 반면, 해외 B/S 직원은 규모는 작지만 모든 업무를 서로 나누어 수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 직원의 경우 수속, 발권, 수하물, 레벨, 의전, 시설, 안전, 보안, 대관업무 등 인천공항서비스지점에서 여러 명이 나눠하는 거의 대다수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어 급여를 더 올려주지 못함을 미안해해야만 했다.


귀임 직전 아내와 아들 녀석이 먼저 떠난 후 2달여간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혼자 살 때는 접이식 매트리스를 빌려주기도 했고 감기 기운이 있을 때면 따뜻한 홍차를 타서 말없이 책상 옆에 놔두며 " 오늘은 그냥 쉬세요."라고 말하며,


려하게 항공편을 핸들링하기도 했고, 공항과 영업지점 직원들 간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 떠나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반복해 준 그 직원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가 있어서 나 또한 무사히 한국으로 귀임하게 되었네. 지난 3년여간 믿고 따라주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네. 자네는 내가 이 하와이라는 곳에서 업무적으로 힘들어할 때 제일 의지가 되었고 힘이 되어준 직원 일세. 나 또한 당신을 존경한다네.


한국에서 파견된 직원은 오직 지점장 한 명이었기에 공항서비스지점의 본연의 업무 외에도 직원들과 함께 상당히 많은 분야를 공부해야만 했다.


특히, 정비와 운항관리사의 업무에도 관심을 가졌고 캐빈매니저가 하는 일을 옆에서 바라보며 눈치껏 습득하였으며, 영업, 화물, 정비, 운항, 급유, 케이터링 등 광범위한 분야의 업무에도 관심을 보여야만 했다. 취임 1년 정도 후 수속 카운터를 에어 차이나에 재임대하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카운터 임대 계약서 작성을 위해 영문 표준 계약서 양식까지 찾아가며 계약 관련 지식도 습득했다.


그만큼 지점의 상황은 열악했지만 직원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그 상황을 이겨내고 있었고 그에 따른 보람이 있었다.


그 외에도, 최고 75명까지 수속을 해봤던 직원 여행객들(SUBLO, Subject To Load)의 수많은 좌석 배정 요청과 VIP 의전 요청을 엑셀로 정리하여 관리하였고, 임신을 하기 위해 남편과 하와이로 여행 온다는 생면부지의 캐빈승무원을 위해 좌석 배정에도 최선을 다했으며, 주내선 연결 편을 하와이 입국 편 항공기의 지연으로 타지 못하게 되자 직원임에도 크게 불만을 제기해서 분리 발권이 무엇인지 설명하며 선배로서 화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고, 수하물의 와인병이 깨졌다고 불만을 제기하시던 기장님께는 안면으로 때운 적도 있었고, 대형 DB(Denied Boarding, 예약 초과 상황.) 사태로 수 십 명의 손님이 초과 예약된 상황에서 몇 일간을 고민하다가 예약을 커버하기 위해 기종 변경되는 B777 항공기의 좌석 배치 등을 공부하고, 별도의 안내문과 좌석배치도를 밤새워 파워포인트로 뽑아 수속 카운터에 테이프로 붙이는 노력들도 있었으며, 부임 초기에 거의 6개월은 매일같이 업무로 고민하며 야밤에 4.99불짜리 싸구려 와인 한 병으로 오지 않는 잠을 청하려 노력했으며, 지점 나름의 비정상 상황 매뉴얼과 OJT 매뉴얼을 만들어 직원들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지면에 모두 실을 수 없지만 하와이에서 업무적으로 만나 인간적으로의 관계로 확장이 되었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 말씀드린다.


그분들 덕분에 간신히 지점을 설립하고 짧지만 영업, 공항, 화물 통합지점장까지 완수하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직원들이 직접 만들어 준 사진첩들과 귀한 선물은 아직도 고이 방 한편에 모셔두고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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