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을 한다는 것 #2

반드시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

by 모설이

친구와 동업자의 가장 다른 부분은 그 친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 동업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미안한 현실이었다. 각자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혹은 알고 싶은 부분까지만, 이라는 제한이 허용되던 관계가 반드시 달라져야만 했다. 우리는 공동체가 되었고, 서로를 이해하고 그에 맞춰 존중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오픈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비극은

고스란히 드러난 그 모습을

역시 그대로 수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성이자 매력이었던 친구의 특별함은 동업자의 입장이 된 나의 옹졸함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특수함이 되었다. 나의 기질과는 다른 그녀의 기질은 올곧고 진득했으며 상냥했다. 나는 이 세 가지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하고 손뼉 칠 수는 있으나 함께할 수 없어 괴로웠다.


오랜 시간 혼자서 타지 생활을 하며 필요를 채우는 최소한의 활동들로만 점철된 나의 일상과 원칙은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려면 동기가 필요했다. 나는 내 원칙을 고수하며 이 일을 하고 싶었는데, 내 원칙은 '나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화가 났다. '그래, 저게 좋은 거지.' 머리로 아무리 되뇌어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대체 왜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맘과 몸이 따로 놀고 있으니 어느 것도 기껍지가 않았다. 나는 말을 덜 하게 되고, 덜 웃게 되었다.


친구는 나의 들쑥날쑥한 기분을 난감해했다. 내 눈치를 보느라 힘들다고 했다. 나는 이 들쑥날쑥한 기분이 떨어진 체력 탓이라고 핑계를 댔다. 10시간의 영업시간에 더해 재료준비를 하는 3시간과 마감 1시간이 반드시 필요했고, 조금이라도 특별한 뭔가를 더 하려면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하루를 잡아먹었다. 내 시간들이 도둑맞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 슬펐다. 어느 것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매일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실은 내가 내 시간을 버리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들 힘들지 않겠는가. 저라고 그저 좋기만 하겠는가. 그럼에도 웃는 친구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난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마음이 나에게 없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몇 차례에 걸친 대화를 했고, 이 깜깜한 기다림의 시간을 조금만 더 버텨내자고 결정했다. 그 과정 중에서 나는 내가 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 바닥을 그 친구에게 보여주게 되었고, 그리고 내가 알지 못했던 내 바닥의 바닥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그다음도 있었구나.


스스로에게 뜨악하는 순간이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또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은 아니었다. 다만 알게 되었을 뿐이다. 내가 생각한 그 이상은 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알게 되었다. 나는 새로 드러난 바닥을 그대로 두었다. 익숙해질 때까지. 거기에 두었다. 쫓아내거나 치워낼 능력이 없는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낯선 그 바닥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내 안에 저런 게 있었구나. 어쩌지.


그다음 생각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동안 2개월이 훌쩍 지났다. 불편하다 말했던 행동들을 하지 않느라 아프다는 얘길 하지 않았더니 실제로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억지로라도 웃고 떠드니 실제로 웃는 것 같았다. 낯설기만 했던 바닥도 이젠 제법 익숙해져서 그냥 사람이 다 그렇지-라며 무심하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기다림의 시간과 싸우는 대신,

기다림에 기다림을 더해 익숙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동업은 이런 것이었나?


불쑥 튀어나온 질문은 늦은 오후부터 밤늦도록 답을 내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리고 다음 날의 노동을 위해 저 구석 어디로 밀쳐졌다. 언젠가 또 들춰볼 날이 있겠지. 털어낸 그것이 찜찜하긴 했으나 내일은 내일의 노동이 있으니 자야만 했다. 잠이 들었다. 깼다. 새벽 알람이 울리기 전이다. 7분이 남았는데 더 잘까? 그냥 일어날까? 일어나자. 몸을 일으키는 순간부터, 오늘은 시작된다.


내가 새롭게 발견한 바닥, 게으름.

생각하지 않으려는 게으름.

고민하지 않으려는 게으름.

적당히 타협하려는 게으름.

대화를 피하고 싶은 게으름.


그 게으른 모습에 오늘도 조금 더 익숙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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