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일만 할 땐, 회사 체질이라고 착각했던 수림

by Gro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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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 일만 할 땐, 회사 체질이라고 착각했던 수림


지금의 수림은 믿기 어렵겠지만
수림에게도 회사가 쉬웠던 시절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 ‘생활’이 아니라
회사 ‘일’이 쉬웠던 시절이다.


그 시절의 수림은
회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애써 보람을 찾지도 않았고,
노력이 곧바로 성과로 이어지지 않아도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본질을 거스르지 않아도
일은 그럭저럭 굴러갔다.
(태평성대에는 다가 올 난리를 예측하기 어려운 법이다)


시키는 일만 하던 시절,
수림은 자신이 회사 체질이라고 여겼다.
아침 출근길에 콧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다.

(지금의 수림은 이 대목을 읽으며 이렇게 말했다. “미친 거지.”)


평사원 시절의 수림은
한 번 설명 들은 건 두 번 묻지 않았다.
회의가 시작되면
노트 한쪽에 자동으로 체크리스트가 만들어졌다.


① 문제는 무엇인가
②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③ 내 해결책은 무엇이 다른가


업무를 받으면
순서를 정하고,
전략을 세우고,
조용히 허나 빠르게 처리했다.

상사가 좋아하던 보고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현재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고요.
원인은 이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해서 진행 중이고,
상대 팀과의 차이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을 보는 순간
수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일 하나는 깔끔하게 하지. 뿜뿜!)


그 시절의 수림은
사람보다 일에 집중했다.
숨이 가빠질 이유도 없었고,
어깨가 미친 듯이 결릴 일도 없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긴장은 적었다.
몸은 일의 리듬에 맞춰
알아서 돌아갔다.

그때의 수림은
호흡을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회사도 단순했다.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걸 잘하면 됐다.

탕비실도 그랬다.
누굴 마주치든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덥죠? 점심은 뭐 드셨어요?”

말에 굳이 의미를 담을 필요가 없던 시절이었다.
인사는 인사였고,
잡담은 잡담이었다.

야근을 해도 억울하지 않았다.
남아 있으면 결과가 나왔고,
그 결과는 눈에 보였다.


지금의 수림은 다르다.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의자에 앉기 전, 숨부터 고른다.

(복식 호흡. 배에 힘. 견갑 내려. 긴장한 티 내지 말자. 외울 주문이 점점 더 늘어난다.)


요즘 수림의 관심사는 아비투스다.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또 다른 본성.
부정적인 언어를 줄이고, 몸짓을 통제하고, 자세와 호흡, 식습관까지 관리한다.


회의 중 누군가 슬쩍 책임을 흐리는 말을 하면
속에서 오래된 반응이 튀어나온다.

(아, 저 XXX. 그게 어떻게 시스템 오류냐. 네가 놓친 거잖아. 이러다가도 혀를 한 번 깨물면서, '아비투스. 아비투스, 평정심 유지'를 되뇐다)


요즘 회의에서 중요한 건
문제보다 말투, 해결책보다 순서다.
같은 말도 어디에, 어떻게 두느냐가 중요하다.

일의 양은 줄었다. 대신 관계가 늘었다.

탕비실도 복잡한 공간으로 변했다.
불이 꺼져 있는지 확인하고 들어간다.
누가 있을 것 같으면 물 마시는 걸 포기한다.

괜히 마주쳐서 괜히 한마디 더 하게 될까 봐.
괜히 표정 하나 더 신경 쓰게 될까 봐.


그때는
일을 잘하면 됐는데,
지금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과거의 수림이
성과로 평가받았다면,
지금의 수림은
성과는 물론 태도,
종합적인 대인관계 평가를 받는 느낌이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모른 체하는 게
관대함인지 무능함인지 헷갈리고,

타인의 희생을 딛고 올라가는 게
쩨쩨한 건지 회사 생활의 기술인지 혼란스럽다.


그래서 요즘의 수림은
일보다 사람들 때문에 더 피곤하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조직 생활이 힘든 사람이었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서 제법 편안하게 숨 쉬던 사람이
이제는 회사 곳곳에서
숨결을 고른다.

메일 한 통을 보내기 전
문장을 세 번 고치고,
메신저 알림이 울리면
잠깐 화면을 보지 않는다.

(또 누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회사가 싫지 않았던 시절이
정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의 수림은
인간관계에 많은 에너지를 쓴다.

가끔은
그때의 수림이 조금 부럽다.

일만 하던 수림.
인정의 기준이 분명하던 시절의 수림.

그 시절에는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지금보다는 덜 했다.

그때의 수림은
아직 몰랐다.

회사에서
일보다 어려운 게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어려움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것도.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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