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소호 (6)
— 소호는 애초부터 가냘프고 병약한 육체를 타고났으나, 그 안에는 칼끝처럼 날이 선 감성과, 유리결처럼 투명하고도 위태로운 섬세함이 그의 내면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외모와 대립하는 이성의 충돌은 그를 더욱 독특하게 만들었으며, 동경을 사기도 했다. 또한 자기 처지에 대해 비관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꿋꿋하게 지키는 기질은 또래와의 기를 겨뤄야 하는 상황에서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특출한 면모는 출척초풍(出逞招風), 즉 두각을 드러내면 오히려 바람을 맞듯이 그에게 화가 되어 돌아왔다. 보육원의 또래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소호는 끊임없이 조롱받았다. 그들은 물어뜯듯 말했다.
“야, 피부도 하얗고 넌 여자애냐!”
“달리기도 못하면서 까불긴!”
“여자애들이랑 앉아서 수다나 떨어!”
그때마다 소호는 짧게, 숨을 삼키듯 대꾸했다.
“그래서 뭐?”
그러나 그 말은 경고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반향을 일으키며, 더욱 잔혹한 조롱을 불러왔다. 아이들은 소호의 어조를 흉내 내며 웃음을 터뜨렸고 과장된 몸짓으로 그를 희롱했다. 특히 새하얗고 창백한 피부그것은 아이들에게 한층 더 조소(嘲笑)의 대상이 되었다. 얼음처럼 차갑고도 연약해 보이는 그 피부는, 조롱하는 자들에게 있어 무언가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지는 법 없이 한 번 더 대꾸했다.
“네가 왜 그런 걸 정해? 무슨 권리로? 그런 걸 정할 권리는 아쉽지만, 너에겐 없어. 내가 앉아서 수다를 떨어도, 달리기를 못해도 내가 여자애 같아서가 아니야. 알아듣겠어?”
주변에서는 더 소란을 피우며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조롱했다. 반에서 가장 힘이 센 남학생이 비웃듯 말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또 여자애처럼 징징거리는 거야? 넌 지겹지도 않냐?”
“축구 따위 하면 그만이야. 그런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거야 네가 여자애라는 뜻이니까.”
“말이 안 통하는군.”
주변이 잔뜩 왁자지껄 해지더니 웃음소리가 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소란 속에서, 나는 그를 처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 건넬 말이 떠오르지 않아, 대신 조용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여전히 완고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남학생과 주변의 아이들이 서로의 악의를 경쟁하듯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아, 맞다! 너 저 녀석이랑 붙어 다녔지? 사귀기라도 하면 나한테 혼날 줄 알아. 으, 토할 것 같아.”
“우웩!”
역겨움을 과장하는 몸짓과 함께, 웃음소리가 교실 가득 퍼졌다.
담임 선생은 언제 오는 것인지, 우리 둘 사이에만 존재하는 정적이 교실을 가득 메운 듯했다.
소호는 여태 다른 말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그 말은 그를 움직이게 했다. 처음으로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잠자코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응시한 것이다.
“축구할게.”
“누구 맘대로?”
또다시 주변이 산만해졌으나, 이윽고 교사가 교실로 들어오자 잠잠해졌다. 나는 계속 소호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그와 만났던 날 이후로 볼 수 없었던 그 눈빛을 다시금 마주한 지금, 나는 불안에 목이 탈 지경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볼 수 없었고, 그 어색한 시간이 지난 뒤로는 학교에서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지냈다. 보육원에 돌아온 후에야 다시금 입을 열 수 있었다. 소호가 내게 말했다.
“그 애들 말은 잊어. 나 때문에 너까지 상처받는 거 원하지 않아.”
낮 동안 우리를 가로막았던 거리감은 밤의 고요 속에서 천천히 허물어졌고, 마치 서로를 다시 발견하기라도 한 듯, 그제야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소호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학교에서만큼은 강제로 부여받은 ‘남자아이’의 전형에 은근히 집착했다. 달리기와 공놀이, 몸싸움을 죽도록 혐오하면서도, 그는 그것들을 따랐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존재하기 위해 그는 싸움의 궤도 속으로 스스로 몰아붙였다. 그중에서도 그는 ‘군인 놀이’에 빠져 손끝을 총 모양으로 만들어 전쟁을 벌이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군인이 될 거야.”
소호의 꿈은 그렇게 한순간에 결정되었다. 몇몇 남학생들은 여전히 그를 무시하는 듯한 눈빛을 던졌지만, 그런 꿈을 가진 아이는 소호가 유일했다. 그 눈동자에 서린 열기와 분노를 누가 감히 무시할 수 있을까? 나는 소호가 자랑스러웠다. 그가 속한 세상에서 그는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였다.
……소호는 이따금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아 코에서 피가 흐른 적도 있었다. 그 순간에도 아이들과 몸으로 부딪치며 노는 것으로 분위기는 제법 매끈하고 유희로 이어졌다. 그러나 하굣길에 마주한 그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피가 노출될 때 비로소 핏기가 드러나는 낯빛이란, 강해지기는커녕 여전히 연약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솟구쳤다. 그런데 그 순간, 소호는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내 친구는 너뿐이야. 걱정 마.”
그의 말이 내 귓가를 스쳤다. 왜 하필 내게 이런 말을 했을까? 그가 이렇게 말하면서 나를 향한 의도를 무엇으로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혹시 내가 멋대로 소호를 약한 존재로 여긴 것인가. 그의 말 속에는 그가 가진 삶의 태도가 묻어있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어떤 일종의 자아를 보았는데, 그것은 어쩐지 나보다 한 걸음 더 용감하고 진실한 자리에 서 있는 듯한 존재라는 것을 각인 시키고 있었다.
지금 나는 대체 누구를 걱정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누군가를 걱정할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회피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온 내게 소호의 존재는 고무적이고 진취적인 것의 결착으로 보였다. 마치 윗사람을 보듯이, 그런 소호를 보면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넘겨짚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나의 자아는 어두운 물속에서 방랑하는 미성숙한 형체처럼 더디게 자라났다. 하물며, 저렇게 연약해 보이기만 하는 소호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자랑이 되어주고 있지 않은가.
그에 비해 나의 육체는 지극히 정상적인 체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시도하는 데 있어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단순하게 결함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소호는 내가 갖지 못한 최상의 것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소호의 얼굴은 빈틈없이 아름다웠다….
고작 열등감 속에서 찾아낸 것이 이거라고?
내가 지닌 것은 어째서 이토록 공허하면서도 부서지기 쉬운 것들뿐일까. 소호에게는 명확한 것들이 있었다. 눈에 띄게 아름다운 외모와 예상외로 강한 성격. 소호는 겉으로는 주변에 쉽게 휘둘리는 듯 보였지만, 사실 내면은 반골적인 성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숙명적인 일이라고 여기는 것을 정말 숙명으로 받아들였고, 주변에서의 악담은 그대로 내 가슴을 뚫었다. 그 좌절 속에서 나는 내 존재의 고독과 외로움에 빠져들었고, 마침내 나는 주변의 모든 것에 검은 물감을 칠해버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나에게 세상은 화살처럼 박히는 소음과 악취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건 다 좋으니 차라리 내게 윤택한 외모가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나는, 오로지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수동적인 사고의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기보다 그저 견디는 것에 불과한 날들이었다.
오히려 폭력에 노출되고 잔뜩 버림받은 소호의 배경이 그 애의 외모를 더 빛나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한 사연으로 애처롭게 번들거리는 그 깊은 연한 갈색의 눈동자, 약간은 고불거리고 어깨에 닿을 듯한 머리칼, 창백함을 넘어서 푸른 빛을 띠는 피부……. 눈꺼풀에는 큰 영역으로 얇은 쌍꺼풀이 져 있어서 밤이 되면 소호의 눈은 더 깊게 보였다. 그래서 같은 버림을 받아 이곳에서 살게 되었으면서도, 나는 소호의 고통이 내 것보다 가벼운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진정한 실의는 그런 것이 아니야….’라고.
심지어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내가 짊어진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 마치 고통을 정복한 기사라도 된 양 우쭐한 감각에 빠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소호를 내려다보려는 마음이 들면서도 그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질투가 나를 덮쳤다. 그럴 때면 내 존재가 한없이 음습하고, 타인의 생을 갉아먹는 악마처럼 느껴졌다.
결국 내 주변의 모든 존재는 나를 지나쳐 성장의 기쁨과 고통을 두루 겪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시간의 압박 속에서, 홀로 남겨지는 것을 숙명처럼 여겼다. 고독이란 차라리 씹어 삼켜야 하는 덩어리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것을 음미하듯 삼켜냈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긴장하고, 말이 꼬이면 더욱 위축되어 극도로 소심해지는데 있었다. 그 역시도 소심했지만 분명 나와는 다른, 어딘가 그 애는 항상 능숙해 보였다. 표정 때문이었다.
소호의 경직된 표정은 어딘가 순수함과 능숙함 사이를 오가는 모호한 인상을 풍겼다. 무엇 때문일까… 쉽게 말해, 당돌함을 지니고 있어서? 간혹 여자애라고 놀림당하던 소호는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여학생들 속에서는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았다. 말을 직접 걸어오지는 않지만 그 낌새는 늘 도사리듯이 존재했다. ‘저 애가 내게 말을 걸어와 준다면…’
여학생들은 늘 그런 눈빛으로 소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호는 정작 자신에게 향한 시선을 유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한 기색을 알아차려도 그저 흘려버리는 것 같았다. 그는 상황을 객관화하며 미묘한 감정의 싹을 잘라내는 데 탁월했다. 상대가 기대를 품을수록 그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가차 없이 선을 그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할까. 자신과 관련된 일이면서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걸까. 이것도 능력이라면 소호 역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 만의 은밀한 비밀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때때로 소호가 얍삽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여학생이 애틋한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조용히 가슴속에 그리움을 품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 이런 건 나의 상상에 불과한 생각이었지만 가만히 있던 소호를 곁눈질하며 나를 비교했다.
그래, 네가 이겼다.
이러한 질투심에는 복잡한 심경이 섞어 들어 있었다. 단순히 증오하거나 미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만한 질투심이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소호와 늘 붙어 다녔지만, 실질적으로 가슴 속에는 동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종의 비약적인 동질감을 꿈꾸고 희망찬 마음으로 함께했지만, 한껏 기대를 안고 의지하던 상대가 완벽하게 남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실연처럼…. 장소도, 대화도, 식사도 우리는 모든 걸 함께하고 있었지만, 소호와 나는 한 몸이 될 수 없었다. 그 안타까운 좌절에 홀로 자아가 위축되고 있을 때면, 소호가 나를 다정하게 살펴주며 손으로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내 마음이 지금 어떤지 아는 걸까? 아니면 단순한 동정심인가? 그렇다기엔 소호는 순수함이 깃든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때면 나는 또다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 손길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비뚤어진 왜곡된 시선이 더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외로움과 사투하며 음울에 빠진 것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호는 내게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 우리는 등하교를 할 때 함께했고, 보육원에서는 또다시 몰래 숲으로의 외출을 일삼으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거워했다. 잠깐의 쾌활함은 아이다운 활력을 되찾아 주었고, 곧 호기심에 빠져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다니기도 했다. 우리의 손에는 하나씩의 기다란 나뭇가지가 늘 들려 있었다. 때로는 잔혹하게 숲을 헤집어 놓았고, 때로는 고요한 자연의 모습을 조용히 관찰했다. 기분과 감정은 서서히 그 진폭을 확장해 가며 끝없이 얕고 깊은 갈림길에서 헤매는 듯했다. 감정의 파도는 더욱 요동치며 차가운 심연 속에서 불길한 율동을 맞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