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살아낸 너에게

4화

by Asurai

아무 일도 없던 날이었다.

그래서 더 피곤했다.


특별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크게 잘못된 선택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하루가 끝나갈수록

몸 안에 남아 있는 힘이

조용히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 종일

해야 할 일들을 해냈다.

정해진 시간에 움직였고,

정해진 역할을 수행했다.

누군가 보기엔

아무 문제 없는 하루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런 날이 쌓일수록

사람이 가장 먼저 잃는 게

기대라는 걸.


퇴근길에 창밖을 봤다.

불이 켜진 집들,

각자의 하루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질문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대신 마음속에서만 맴돌았다.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무언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럴 때가 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도,

뒤로 밀려나고 있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는 날.


그래도

주저앉지는 않았다.

불을 켰고,

하루를 마무리했고,

다시 내일을 맞을 준비를 했다.


아주 대단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선택이었다.

오늘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택.


그래서 지금,

아무 일도 없던 이 하루를

끝까지 버텨낸

너에게 말해본다.


오늘도 살아낸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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