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잠들기 전까지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 내 앞길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오늘을 넘기면 내일이 있고,
내일을 버티면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고 믿으면서.
그래서였을까.
그 시절의 나는 늘 앞만 봤지,
뒤에 남겨진 뒷모습에는 거의 신경 쓰지 못했다.
부모님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퇴근하면 불이 켜진 집이 있었고,
저녁이 차려진 식탁이 있었고,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결혼을 했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TV를 켜두고,
각자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잘 시간이 되면 침대에 눕는다.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워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잠이 든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하루다.
특별히 기쁘지도,
크게 힘들지도 않은 날.
예전의 나라면
이런 하루를 지루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 일도 없다는 건
아무것도 아닌 날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런데 요즘은
이런 하루가 낯설지 않다.
소파에 앉아 TV를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 위로
예전에 이런 저녁을 보내고 있었을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말없이 앉아 있던 뒷모습,
하루를 다 써버린 얼굴.
그때는 몰랐다.
왜 그렇게 조용했는지,
왜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였는지.
지금에서야 조금 알 것 같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그날을 끝까지 살아낸 증거였다는 걸.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 있다.
멈춰 서서야 보이는 얼굴이 있고,
겹쳐 보이는 시간이 있다.
오늘도 저녁을 먹고,
TV를 켜두고,
잠들기 전까지
그냥 그렇게 살았다.
예전엔 이 시간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 시간이 괜히 고맙다.
아마 부모님도
이런 하루를 그렇게 보내왔을 것이다.
그저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