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냥 살고 있던 시간

언젠가 같은 자리에 앉게 되는 날

by Asurai

시간이 흐르면

자리는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예전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었고,

누군가가 켜둔 불빛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쪽이었다.


지금은 가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상상을 한다.

아직 오지 않은 밤인데도

이미 몇 번쯤 지나온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지는 순간.


언젠가

정말 그런 날이 오게 되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을까.


말없이 TV를 켜두고,

괜히 채널을 몇 번 바꾸다가

다시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시계를 한 번 더 확인하는 밤.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괜히 마음이 먼저

문 쪽으로 가 있는 시간.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보다

그 사람이 오늘을

무사히 지나왔는지가

더 먼저 떠오르는 밤.


아마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말이 적어질지도 모른다.


굳이 다 묻지 않아도 되고,

굳이 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간 속에 앉아 있을 것 같다.


예전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땐

왜 그렇게 조용했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그 자리가 어떤 마음으로 채워져 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기다리는 사람의 밤은

길지 않다.

그저

문이 열리는 순간까지

조용히 이어질 뿐이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하루는 자연스럽게 끝이 난다.


언젠가

나도 그런 밤을

여러 번 지나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괜히 아무 말이나 건네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떠올릴까.


아직은

그 자리에 완전히 서 있지 못한 채,

조금은 어설프게

앞과 뒤를 동시에 바라보던 시간.


그래도

그 사이에서

멈추지 않고

조금씩 익숙해지려 했던 밤들.


오늘도

별일 없이 하루가 끝났다.


아직은 내가

돌아오는 쪽에 더 가깝지만,

언젠가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밤은

아마

지금의 이 밤과

조금 닮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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