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냥 살고 있던 시간

생각보다 오래 남는 건 이런 밤이다

by Asurai

예전에는

무언가 특별한 날들만 기억에 남는 줄 알았다.


기억할 만한 사건이 있어야 하고,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순간이 있어야

그날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루는

기억할 필요도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날보다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간 밤이

더 오래 남는 것 같다는 생각.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있고,

각자 다른 걸 보다가

같은 시간에 일어나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는 밤.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고,

웃을 일도 많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그 시간이 마음에 남는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대단한 일이 있어서도 아니고,

특별히 행복해서도 아닌데,

그저

하루가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이

조용히 남아 있는 느낌.


예전에는

이런 밤을 그냥 흘려보냈다.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굳이 붙잡을 이유도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밤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는 뜻이고,

그 말은

그날이 조용히 잘 끝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하루가 끝날 때면

괜히 한 번 더

그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말없이 앉아 있던 순간,

별 의미 없는 대화,

그 사이에 흘러가던 시간.


아마 나중에 떠올리게 되는 건

이런 날들일지도 모른다.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 익숙한 장면들,

특별하지 않았는데

왜인지 잊히지 않는 밤들.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은 없었지만,

이 밤이

어쩐지 오래 남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굳이 붙잡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이런 시간은

놓치지 않아도

이미 남아 있을 테니까.

이전 10화우리가 그냥 살고 있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