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사랑과 그림자가 동시에 찾아올 때

by Asurai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내 일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미용 도구를 닦는 손도,

지하철 창에 비친 내 얼굴도,

심지어 퇴근길 길가의 카페 유리조차

조금 더 환하게 보였다.


사람이 좋으면, 세상도 따라 예뻐진다.


그때가 딱 그랬다.


그녀와의 대화는

작은 숨결처럼 따뜻했고,

나는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다.


무언가가 소중해지는 순간,

사람은 괜히 더 천천히 걷는다.

놓칠까 봐.



그날,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친구들과 가볍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이름.

하지만 성이… 그녀와 같았다.

그녀의 성씨는 흔한 성씨가 아니었다.


“형… 죄송한데… 누나 좀 살려주세요.”


순간, 시간이 멈췄다.

방 안의 웃음소리도, TV 소리도, 술잔 부딪히는 소리도

모두 희미해졌다.


살려달라고?


가슴이 서늘하게 식었다.



달려가는 밤


나는 술잔을 내려놓고

코트를 대충 움켜쥐었다.


친구가 “무슨 일인데?” 묻자

입술이 굳었다.


“일단 가야 돼. 큰일 난 것 같아.”


택시 안.

핸드폰 화면에서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동생이 말했다.


“전 남자친구가 데리고 옥상으로 간 것 같아요.”


그 말을 보는 순간

심장이 가슴뼈를 뚫고 나오려는 것 같았다.


추운 겨울밤,

내 몸에서 땀이 났다.



떨리는 대기


나는 1층 현관 앞에서

말 그대로 서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3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공포.

그리고…


지켜야 한다는 본능.


나는 남았다.

그냥 서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수백 번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렸다.



분노의 순간


그가 내려왔다.

동생이 말한 인상 그대로.

그 순간, 생각할 틈은 없었다.


나는 그의 옷깃을 잡아

근처 놀이터로 끌고 갔다.


숨이 가빴다.

온몸이 떨렸다.


머릿속엔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여자에게 손대선 안 된다.

그건 인간이길 포기하는 거다.”


그 가르침이

내 주먹에 불을 붙였다.


그날 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그렇게 때렸다.


분노는 이성보다 먼저 움직인다.

그때의 나는

사람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그녀를 안아준 순간


“그만해!”


친구가 나를 말리는 순간,

현관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눈이 붉고,

입술이 떨리고,

손이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뛰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고,

나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세상은 잠시 멈춘 것 같았다.


그 순간 알았다.


아, 이 사람을 지키고 싶다.


그날 밤,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게,

가장 치열하게.



그러나… 그림자는 이미 따라오고 있었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니, 오래갈 마음의 준비조차 못 했다.


따뜻했던 겨울밤은

곧 차가운 균열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켜낸 순간이

세상을 잃는 시작이 될 줄은.


그때는 단지 이렇게 믿었다.


사랑이면 다 견딜 수 있다고.


그리고 나는

그 믿음 속으로 그대로 걸어 들어갔다.


다음 장에서

그 믿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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