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손끝에서 무너지는 꿈

by Asurai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 좋았다.

내 손끝에서 누군가가 더 멋져지는 순간,

그 웃음이 내 어깨를 세우고, 내 마음을 채웠다.


나는 진심이었다.

처음으로, 정말로 진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늦은 오후.


평소처럼 마네킹 머리에 섹션을 나누고

가위를 들었다.

손목에 힘을 주고, 숨을 고르고—

가위를 조심스레 쥐었다.


그때였다.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금속의 감촉.

가위가 손에서 흘러내렸다.


처음엔 그냥 실수라고 생각했다.

손에 땀이 조금 난 거라고.

다시 잡았다.

다시 미끄러졌다.


손바닥이 젖어 있었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손바닥을 바라봤다.


안다.

평생 가지고 있던 몸.

평생 익숙했던 땀.

하지만 그날만큼은

내게 낯선 적이 없었다.


담담함이 아니라,

처음 느낀 공포였다.


내가 선택한 꿈이

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건가.


그 생각이

가위보다 더 날카롭게 나를 찔렀다.



연습이 답일 줄 알았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미 너무 늦게 시작했으니까.


친구들이 주말에 놀 때

나는 실습실에 있었다.

손끝이 얼얼할 때까지,

밤늦게까지,

거울 속 쑥스러운 스무 살을 붙잡고 연습했다.


하지만 똑같았다.

가위는 손에서 미끄러졌고,

빗은 자꾸 떨어졌다.


땀을 닦아도,

닦아도,

다시 차올랐다.


땀이 아니라

절망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반복된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걸.


그 사실이

목을 조여왔다.



처음으로 무너지는 밤


그날 학원 문을 나서며

담배를 꺼냈다.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손끝이 떨려서였다.


연기가 올라갔다.

눈물이 따라 올라왔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왜 하필 나야…”


갖고 싶었던 게 큰 것도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


그 작은 꿈마저

내 몸이 거부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던 장애물.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조건.


그건 세상 어떤 실패보다

잔인했다.


바람이 차가워서가 아니라

내가 부서져서 추웠다.



그녀의 손, 내 어둠


그녀는 옆에 있었다.

말없이, 조용히 내 옆을 지켰다.


“괜찮아.

다른 길이 있을 거야.”


그녀의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지만

그 밤의 나는

그 따뜻함조차 아프게 느껴질 만큼

지쳐 있었다.


꿈을 잃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무너진다.


그녀의 손이

내 팔을 잡았을 때

나는 겨우 숨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도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버텨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었다.

정말 그렇게 믿었다.


몰랐다.


곧이어 찾아올 진짜 폭풍을

이 절망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오늘의 글이 당신의 마음에 닿았다면,

한 번의 응원이 제게 다시 일어설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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