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인생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 단 3초

by Asurai

꿈이 흔들리던 어느 겨울,

나는 스무 살 첫 생일을 맞았다.


조촐했다.

작은 방, 저렴한 케이크, 그리고 네 명.

나, 그녀, 그녀의 친구, 그 친구의 남자친구.


특별한 건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이제 내 삶도 좀 웃어주겠지”라는

순진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삶은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걸 얼마나 잔인하게 빼앗을 수 있는지도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그날은

내가 스무 살이었고,

꿈을 막 잃었고,

사랑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날이었다.


그리고 세상도 나를 향해 손을 뻗는 것 같았다.

사실은 밀어 떨어뜨리려던 손이었지만.



술이 조금 과했다.

아니, 많이 과했다.


기억은 한 조각씩 끊겨 있었고

눈을 떴을 땐 해가 중천에 올라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하루가 더 지나고—

그저 스무 살의 흔한 숙취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틀 후,

나는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알았다.


내 인생이 거기에서

쏟아져 사라졌다는 걸.


신분증.

도장.

카드.


없었다.


딱 3초.

내 머리가 완전히 하얘지는 데 걸린 시간.



숫자 하나가 사람을 무너뜨릴 때


카드사에 전화했다.

손이 떨려 제대로 번호도 누르지 못했다.


“사용 내역이 확인되었습니다.”


금액을 보고

숨이 목에서 걸렸다.


전액 사용.

카드론까지 풀로 당김.


“잠.. 잠시만요… 다시 말씀해주시면…”


다시 듣는 숫자는

더 잔인했다.


그건 돈이 아니라

내 삶이었다.


나는 경찰서로 달렸다.

플라스틱 의자 위에서

손발이 차갑게 굳어 갔다.


경찰이 말했다.


“휴대폰도 두 대 개통돼 있습니다.

소액결제도 한도까지 사용됐습니다.”


나는 믿지 못했다.

그냥 멍했다.


총 4천만 원.


스무 살에게는

세상 그 자체와 같은 숫자였다.



누군가의 실수, 누군가의 악의, 그리고 내 삶


그녀는 울고 있었다.


“미안해… 생일 선물 가져다줄 거라 해서

현관 비밀번호 알려줬어… 술이 덜 깨서…”


나는 그 표정을 보며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분노? 있었다.

원망? 했다.

하지만…


그녀는 죄인이 아니었다.

그저 순진했고, 안일했고, 믿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대가를 치렀다.



법 앞에서, 증거라는 이름의 배신


고소장을 쓰고,

조사를 받고,

통신사에도 신고했다.


하지만 그는

내 번호로 조작된 메시지를 제출했다.


“형님 마음대로 쓰세요.”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내 입에서 나온 것처럼 문서에 남아 있었다.


300만 원 입금 후 인출도

“자발적 협조”로 기록됐다.


순진했던 과거의 내가

스스로 쓴 자백처럼 바뀌어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아니, 웃을 힘도 없었다.


수사관이 고개를 숙였다.


“증거가 너무 확실합니다…

미안합니다.”


그 말은

판결문 같은 사과였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스무 살,

벌써 세상과 맞서기엔 너무 어린 나이.


하지만 어른이 되기엔

너무 늦은 순간.



믿음이 무너지면, 세계가 무너진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도 안 나왔다.

그 정도 슬픔은

눈물이 아니라 침묵으로 흘렀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갚을게.

정말… 뭐든 할게.

나쁜 일이라도…”


나는 그 말을 막았다.


“그건 아니야.

이건 내가 안고 갈게.”


왜 그런 대답이 나왔을까?


아마 그때도

나는 마지막 자존심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자존심이

나를 살렸고,

동시에 찢어놨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사랑은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이 만든 틈으로 세상이 들어왔다.



가장 깊은 바닥 위에 선 스무 살


휴대폰이 끊겼다.

카드는 막혔다.

은행에선 숫자가 사라졌고

미래에서도 빛이 사라졌다.


나는 스무 살에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날 밤,

소주병을 들고 속으로 외쳤다.


“왜 나야…

정말로… 왜 하필 나야…”


그때 처음으로

나는 조상에게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한 번만,

딱 한 번만 버티게 해달라고.


그리고 처음으로

신을 원망했다.


지켜준다면서, 왜 내 인생은 이렇게 무너지는데요.


그날,

나는 울지 않았다.


울 힘조차 잃었다.


세상이 무너질 때

사람은 소리 내지 않는다.

그저 숨이 꺼지듯

조용히 무너질 뿐이다.


그리고 나는 배웠다.


스무 살에게 세상은 잔인할 수 있다.

하지만 버티는 법은,

그때 배웠다.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미래는 검은색이었다.


그러나

내가 계속 살아 있다는 사실만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가

아주 천천히,

나를 다시 일으킬 날을 준비시키고 있었다.




오늘의 글이 당신의 마음에 닿았다면,

한 번의 응원이 제게 다시 일어설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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