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 단 3초
꿈이 흔들리던 어느 겨울,
나는 스무 살 첫 생일을 맞았다.
조촐했다.
작은 방, 저렴한 케이크, 그리고 네 명.
나, 그녀, 그녀의 친구, 그 친구의 남자친구.
특별한 건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이제 내 삶도 좀 웃어주겠지”라는
순진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삶은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걸 얼마나 잔인하게 빼앗을 수 있는지도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그날은
내가 스무 살이었고,
꿈을 막 잃었고,
사랑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날이었다.
그리고 세상도 나를 향해 손을 뻗는 것 같았다.
사실은 밀어 떨어뜨리려던 손이었지만.
⸻
술이 조금 과했다.
아니, 많이 과했다.
기억은 한 조각씩 끊겨 있었고
눈을 떴을 땐 해가 중천에 올라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하루가 더 지나고—
그저 스무 살의 흔한 숙취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틀 후,
나는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알았다.
내 인생이 거기에서
쏟아져 사라졌다는 걸.
신분증.
도장.
카드.
없었다.
딱 3초.
내 머리가 완전히 하얘지는 데 걸린 시간.
⸻
숫자 하나가 사람을 무너뜨릴 때
카드사에 전화했다.
손이 떨려 제대로 번호도 누르지 못했다.
“사용 내역이 확인되었습니다.”
금액을 보고
숨이 목에서 걸렸다.
전액 사용.
카드론까지 풀로 당김.
“잠.. 잠시만요… 다시 말씀해주시면…”
다시 듣는 숫자는
더 잔인했다.
그건 돈이 아니라
내 삶이었다.
나는 경찰서로 달렸다.
플라스틱 의자 위에서
손발이 차갑게 굳어 갔다.
경찰이 말했다.
“휴대폰도 두 대 개통돼 있습니다.
소액결제도 한도까지 사용됐습니다.”
나는 믿지 못했다.
그냥 멍했다.
총 4천만 원.
스무 살에게는
세상 그 자체와 같은 숫자였다.
⸻
누군가의 실수, 누군가의 악의, 그리고 내 삶
그녀는 울고 있었다.
“미안해… 생일 선물 가져다줄 거라 해서
현관 비밀번호 알려줬어… 술이 덜 깨서…”
나는 그 표정을 보며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분노? 있었다.
원망? 했다.
하지만…
그녀는 죄인이 아니었다.
그저 순진했고, 안일했고, 믿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대가를 치렀다.
⸻
법 앞에서, 증거라는 이름의 배신
고소장을 쓰고,
조사를 받고,
통신사에도 신고했다.
하지만 그는
내 번호로 조작된 메시지를 제출했다.
“형님 마음대로 쓰세요.”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내 입에서 나온 것처럼 문서에 남아 있었다.
300만 원 입금 후 인출도
“자발적 협조”로 기록됐다.
순진했던 과거의 내가
스스로 쓴 자백처럼 바뀌어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아니, 웃을 힘도 없었다.
수사관이 고개를 숙였다.
“증거가 너무 확실합니다…
미안합니다.”
그 말은
판결문 같은 사과였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스무 살,
벌써 세상과 맞서기엔 너무 어린 나이.
하지만 어른이 되기엔
너무 늦은 순간.
⸻
믿음이 무너지면, 세계가 무너진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도 안 나왔다.
그 정도 슬픔은
눈물이 아니라 침묵으로 흘렀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갚을게.
정말… 뭐든 할게.
나쁜 일이라도…”
나는 그 말을 막았다.
“그건 아니야.
이건 내가 안고 갈게.”
왜 그런 대답이 나왔을까?
아마 그때도
나는 마지막 자존심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자존심이
나를 살렸고,
동시에 찢어놨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사랑은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이 만든 틈으로 세상이 들어왔다.
⸻
가장 깊은 바닥 위에 선 스무 살
휴대폰이 끊겼다.
카드는 막혔다.
은행에선 숫자가 사라졌고
미래에서도 빛이 사라졌다.
나는 스무 살에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날 밤,
소주병을 들고 속으로 외쳤다.
“왜 나야…
정말로… 왜 하필 나야…”
그때 처음으로
나는 조상에게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한 번만,
딱 한 번만 버티게 해달라고.
그리고 처음으로
신을 원망했다.
지켜준다면서, 왜 내 인생은 이렇게 무너지는데요.
그날,
나는 울지 않았다.
울 힘조차 잃었다.
세상이 무너질 때
사람은 소리 내지 않는다.
그저 숨이 꺼지듯
조용히 무너질 뿐이다.
그리고 나는 배웠다.
스무 살에게 세상은 잔인할 수 있다.
하지만 버티는 법은,
그때 배웠다.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미래는 검은색이었다.
그러나
내가 계속 살아 있다는 사실만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가
아주 천천히,
나를 다시 일으킬 날을 준비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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