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다시 맞붙는 순간
전역 후, 아르바이트와 일용직을 전전하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가 말했다.
“야, 나 휴대폰 매장 차렸어.
힘들면 와서 같이 일해볼래?
너 말도 잘 하고 사람 상대 잘하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박혔다.
‘그래, 여기서 다시 시작해볼까.’
친구가 사장이었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
적어도 나를 속이진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나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번 해볼게.”
그렇게 나는
친구가 운영하는 휴대폰 매장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했고,
상품 설명도 서툴렀다.
그래도 사람이 찾아오고, 내가 말하고, 설득하고, 계약이 잡힐 때마다
마음 속에서 작은 자신감이 솟았다.
“나… 다시 할 수 있을까?”
빚과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 뒤에 갇혀
잊고 살았던 질문이
조금씩 깨어났다
친구가 운영하는 휴대폰 매장에서의 첫날.
나는 세미정장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오랜만에 ‘직장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다시 일하고 있는 사람이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조금 뜨거워졌다.
내 이름으로 된 카드도 없고, 통장도 텅 비었지만
그래도 일하는 사람은 다시 꿈꿀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처음엔 서툴렀다.
휴대폰 요금제도, 단말기 가격표도,
사람들의 질문도 버겁기만 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자신 있었다.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
어떤 요금제가 더 알맞을지,
불필요한 옵션은 빼야 하는지,
손님이 이해할 때까지 천천히 설명했다.
하루, 둘, 셋…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말투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고객들은 내 진심을 느꼈는지
가끔 이렇게 말했다.
“젊은데 설명 잘하네.”
“아, 믿음이 간다. 이걸로 해줘.”
그 말들이
내 안에 굳어 있던 얼음을 조금씩 녹였다.
“그래… 나도 사람들한테 가치를 줄 수 있구나.”
그리고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휠체어를 타고 매장에 들어왔다.
오래된 폴더폰을 조심스럽게 꺼내며 말했다.
“아가야, 요즘 폰이 너무 어렵네.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나는 최대한 친절히 설명했다.
손에 힘이 약하다는 걸 알기에
가볍고 버튼이 큰 휴대폰을 추천했다.
요금도 가장 저렴한 걸로.
서류 작성하고, 개통까지 도와드리고,
할머니는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고맙다.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 한마디에
목이 잠시 메어왔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 후,
그 할머니가 울면서 가게로 다시 찾아왔다.
“아가야… 나 이거 잃어버렸어. 어떡하니…”
손이 떨리고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는 모습.
나는 당연히 환불해드리려 했다.
그 순간, 친구이자 사장인 사람이 다가와
할머니를 앉히고는
새 휴대폰을 또 개통해버렸다.
할머니는 영수증을 손에 쥐고 울었다.
“나… 돈이 없는데… 어떡해…”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입술이 말랐고, 속이 타는 것 같았다.
영업은 숫자를 만드는 일일지 몰라도
양심은 숫자로 셀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친구에게 조용히 말했다.
“친구야, 이렇게 하지 말자.
고객님들 바보 아니다.
언젠가 다 돌아와.
정직하게도 할 수 있잖아.”
친구는 코웃음을 쳤다.
“세상을 그렇게 착하게만 살면 성공 못해.
넌 아직 현실을 몰라.”
그 말은
군 시절 법 앞에서 억울함을 견뎌야 했던 나를 또 찔렀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그래. 그럼 여기서 그만하자.
나라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볼게.”
그 말만 남기고,
명함케이스를 꺼내 데스크 위에 올려두었다.
찬 바람이 불던 밤,
문을 나서는 순간
기묘하게도 마음이 가벼웠다.
돈을 잃어도, 일자리를 잃어도
양심을 잃지는 않았다.
그게 내가 지켜야 했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다시,
어둡지만 솔직한 길 위로 발을 옮겼다.
“괜찮아. 다시 할 거야.
시작은 처음이 아니니까.”
그 말만 반복하며
손이 텅 빈 채로
나는 또다시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갔다.
응원은 제게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됩니다.
오늘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