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 위에서 배운 현실, 사랑이 무게가 될 때
4주 교육이 끝나고
나는 지방 골프장 숙소에 작은 짐 하나를 들고 내려갔다.
집보다 좁고, 따뜻함 없는 방이었지만
그곳은 내게 잠시나마 희망의 대기실이었다.
첫 두 달, 수입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카트 뒤를 쫓으며 뛰고, 클럽을 들고, 손님에게 웃음을 전했지만
내 지갑엔 만원, 이만원 팁 몇 장이 전부였다.
그 작은 지폐가
그때의 나에겐 세상의 어떤 보상보다 귀했다.
컵라면 하나를 사서
숙소 침대 모서리에 앉아 뜨거운 국물을 들이킨 날,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이건 굴욕이 아니라, 재건이다.”
새벽 4시,
어둠이 남아 있는 숙소 밖에서 나는
손을 문질러가며 카트를 끌고 나왔다.
해가 뜨기 전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뛰며
몸에서 땀이 아니라 힘과 체력이 흘러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첫 배정을 마치고
정식 캐디 수입이 찍힌 순간—
나는 말없이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심장이 뛰었다.
손이 떨렸다.
“내 힘으로… 벌었다.”
한 번 무너졌던 이름이
조금씩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밤하늘을 보며
나는 침묵 속에서 빛나는 달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진짜 조금만 더.”
그 시기,
이미 내 곁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군 생활 중 우연히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그저 조용히 호감만 간직했다.
내 처지가 워낙 비참했고, 미래는 안개뿐이었으니까.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 감정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천천히 서로를 향해 걸어갔고
마침내 연인이 되었다.
그때 나는 말했다.
“지금 내 상황이 너무 못났다.
빚도 많고, 가진 것도 없고, 미래도 없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같이 버티면 되지.”
그 말이 나를 살렸다.
누군가가 나라는 현실을 알고도
머물러주었다는 사실이
그때의 나에겐 기적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방 골프장으로 내려가자
그녀는 결국 말했다.
“나도 너 있는 데로 내려갈게.”
처음엔 감사했다.
외로운 숙소 생활에
누군가 곁에 있다는 건 얼마나 큰 버팀목인가.
하지만 곧 현실이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응원은 제게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됩니다.
오늘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