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숫자가 계단처럼 올라가던 시절

by Asurai

첫 계약 이후,

내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던 건

휴대폰 알람도, 날씨도 아니었다.


전날 상담 리스트.

“오늘 누구에게 다시 전화할까?”

“어제 한 멘트 중에 보완할 게 뭐였지?”


거의 병적이었지만

나는 그걸 집착이 아니라 생존이라 불렀다.


매장에는 전설 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가 손님을 응대하면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만큼 완성된 사람이었다.


그가 어느 날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넌 더 위로 올라 갈 수 있는 놈이야.

그러니까, 날 넘어서봐.”


격려가 아니라 선언처럼.

그리고 그 말은 나를 찔렀다.

무모함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그날 이후 나는

그 선배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갔다.

• 어떤 질문을 먼저 하는지

• 고객의 표정을 어떻게 읽는지

• 가격 얘기를 꺼내는 타이밍

• 계약서를 꺼내는 손의 속도와 표정까지


심지어 퇴근 후

그 선배의 말투까지 따라 하며 혼잣말을 했다.


웃기지?

근데 난 그때 진지했다.

미친 사람처럼.


“저 사람을 뛰어넘기 전까진,

나는 멈출 수 없다.”


메모장엔 숫자만 남았다


고객 한 명 상담이 끝나면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 나이

• 가족 구성

• 예산

• 선호 브랜드

• 반응 좋았던 말

• 눈이 흔들린 순간


한 명, 두 명, 열 명…

나중에는 하루 메모가 열 페이지가 넘었다.


집에 돌아오면

그 메모를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물었다.


“오늘 나는 어떤 점에서 부족했지?”


다들 쉬는 시간에 숨 돌릴 때,

나는 다음 상담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게 꾸준히 쌓였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계약이 계단처럼 올라가기 시작했다.

• 첫 달 : 3건

• 두 번째 달 : 5건

• 세 번째 달 : 8건

• 네 번째 달 : 15건


매장이 술렁거렸다.

“쟤 누구야?”

“신입 맞아?”


근데 난 웃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재능보다 태도를 믿었다


사람들은 종종 말했다.


“영업은 타고나는 거야.”

“넌 원래 말 잘하잖아.”


아니다.

내 말투는 거칠었고,

표정도 딱딱했고,

처음엔 진짜 어색했다.


내 무기는 단 하나였다.


배우는 데 자존심이 없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영업이 쉬워졌다.


고객과 밀당하지 않았다.

내 자존심은 계약서 뒤에 접어두었다.


그리고 매달 숫자로 증명했다.


어느 늦은 밤


하루 마감 후,

텅 빈 매장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숫자를 보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래…

나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사람이다.”


사무실 책상 위로,

상장 하나와 트로피가 보였다.


'루키왕'


입사한지 6개월이 넘지않은

전국의 모든 신인 몇 백명 중 1등.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해낸 것이었다.


웃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올라가자.”


그게 다였다.

그 말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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