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에서 배운 삶의 기술

온전하게 나의 생활에 집중하는 법

by 윤샹

지금처럼 여행을 위해 무언갈 즐기러 가야한다면 아마 북유럽 국가를 쉬이 고르지 못할 것 같다. 내가 핀란드와 스웨덴에서 한 거라곤 카우치서핑 호스트와 대화하기, 산책하기, 로컬 친구들 만나기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두 북유럽 국가에서 나는 '삶의 기술'을 제대로 배워온 것 같다.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온전하게 나의 삶에 집중하는 법과 그에서 파생되는 여유 그리고 타인에 대한 친절. 이 세 가지만으로도 스웨덴과 핀란드 두 북유럽 국가에서 나는 많은 걸 배우지 않았을까.

2015-05-21-21-56-40-1.png 스물네살의 나의 일주일 일과

여행을 떠나기 전 나의 생활은 빡빡하기 그지없는 효율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하루하루였다. 어찌나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지 한 달에 한 번 응급실에 실려가는 것이 일상이었고 빽빽하게 계획된 시간에 친구들이 끼어들려고 하면 등을 세운 고양이마냥 예민하기 그지없었다. 겨우 스물넷. 어떻게든 나의 삶을 세워보겠다고 바락바락 애를 쓰던 시절이었지만 참 외로웠던 시절.


20150110_171945.jpg 월별로 할게 참 많았던 그 때


나를 갈아넣으며 얻은 것들은 지금의 나를 만든 토대가 되어주었지만 시간의 노예처럼 시간과, 돈과 나란 사람의 '자격'의 타이틀을 맞바꾸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차곡차곡 쌓여가는 나의 스펙과 함께 외로움도 차곡차곡 쌓여갔달까.


무튼 그런 시간이 지나고 배낭여행을 시작해 한 달이 넘어갈 즈음 나는 북유럽의 나라들로 향했다. 몽골에서 나의 취향을 채우는 것에 대해 처음 생각을 열고,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적응한 후에 다다른 핀란드와 스웨덴.


20150715_100615.jpg 지도에 선만 찍찍 그어 떠난 내 첫 배낭여행


핀란드에서는 '마음의 여유 = 타인에 대한 친절'로 나타난다는 것을 아주 가슴 깊이 느꼈다. 열차에서 내려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집을 두리번두리번 찾고 있을 때 1분도 안 되어 나타난 한 사람. 길을 잃었냐며 같이 지도를 봐주고 방향을 알려주는 행인의 친절에 다소 놀랐다. 프랑스에서 만난 집시처럼 도움을 주는 척 슬쩍 돈을 채가려는 것일까 경계했는데 그냥 '친절'이었다.


20151004_102129.jpg 핀란드 호스트의 방

그렇게 도착한 호스트의 집. 동생과 함께 도착했는데 넓은 방을 쓰라며 자기 방을 내어주고 자기는 거실 바닥에서 자는 호스트를 보고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놀라웠다.


그뿐만 아니라 영어를 못하는 동생이 심심할까 바디랭귀지로 소통이 가능한 게임을 같이 해주고 기침하는 걸 기억했다 떠나는 날 감기약을 손에 쥐어준 이 친구.... 자기는 일찍 나가니 아침을 챙겨먹으라며 냉장고 안을 소개해주고 자기 고향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는 등 머무는 동안 정말 세심하게 배려를 보여주었다. 이런 베풂은 어디서 오는 걸까....


훗날에야 느꼈지만 진정으로 내 것을 대가 없이 베풀어줄 수 있고 상대의 행복을 빌 수 있을 때 나 또한 정말 행복할 수 있다. 그 친구는 이걸 이미 알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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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가 챙겨준 먹거리들


호스트가 너무도 특별하기도 했지만 헬싱키 곳곳에서도 비슷한 친절을 여러 번 마주쳤다. 표를 대신 끊어주시던 할아버지와 물건을 사지 않아도 잔돈을 바꿔주시던 아주머니까지.


실은 일상의 행복은 꼭 나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마주치는 '일면식 없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표정이 밝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한 세상에서 살다보면 삶에게 환대를 받고 있는 기분이 드니까.


20151004_135431.jpg 길거리에서 만난 천사 아주머니


무튼 그렇게 정말이지 불특정 다수에게 받은 친절로 행복에 젖어있던 나는 스웨덴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스웨덴의 첫인상은 '알록달록' 색감이 아주 다채로웠던 스웨덴은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행복했다. 게다가 처음 만난 호스트가 어찌나 따스했던지 '나는 호스트 복이 정말 많구나'하고 속으로 너무도 감사했다.


20151012_194400.jpg 호스트가 구워준 애플파이


재미나게도 스웨덴의 호스트들은 모두 나에게 '애플파이'를 구워주었다. 덕분에 그 향과 맛이 새겨져 여전히 애플파이를 너무도 애정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시간과 품이 오래 들어도 천천히 천천히 식사를 준비한다. 사과를 하나하나 썰고, 설탕과 시나몬 가루를 섞고 밀가루를 반죽하고 그걸 만들면서 하루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맛있게 요리한다. 밥이라곤 허기를 달래고 후딱 먹고 일어나면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살았던 나에겐 다소 생소한 모습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배고파 죽겠는데 왜 아직도 안 됐어!'를 백 번 넘게 외치며 재촉했을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던 달콤한 애플파이의 향. 식사를 준비하면서 나누는 하루의 이야기가 그렇게도 따스한 것인지 처음 알았다. 고등학생 때는 기숙사에서 나오는 급식을 후딱 먹고 학교를 가야했고 대학생 때는 자취를 하며 끼니를 건너뛰기 십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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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스스로를 위해 아침을 차리고 창밖을 보며 그 시간을 즐기는 게 행복하다던 나의 호스트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예쁜 컵에 먹을 것을 차려내고 향긋한 향초로 분위기를 내는 그들을 보며 인생이란 어쩌면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나에게 차려주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북유럽 인테리어는 그저 겉모습이 아닌 이런 그들의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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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를 위해 내가 차린 한식


그런 그들의 생활을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호스트들에게 만들어주고자 챙겨간 고추장과 소면을 꺼내들고 비빔국수를 한 그릇 만들어내기도 하고, 슈퍼에서 장을 봐와 닭볶음탕을 해주기도 하였다. 처음이었다 요리가 즐겁게 느껴졌던 것은. 늘 허기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가장 간단한 것들을 만들어내거나 밖에서 가볍게 떼우던 것이 끼니였는데 이때만큼은 그들에게 내가 사는 곳의 음식을 맛보여주고 싶고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주고 맛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요리를 했다. 이런 것이 요리의 참 행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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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의 삶은 참 낭만적이다. 그저 깔끔하게 해놓고 사는 것만으로도 잘 사는 것이라 여기던 내게 호스트의 집은 곳곳이 그녀의 삶으로 덮힌 그녀 그 자체로 보였다. 특히 예쁜 조명과 프레임으로 꾸며진 세계지도는 그렇게도 낭만적일 수가 없었는데, 그녀는 그녀가 다녀온 도시들을 예쁜 핀으로 꽂아 체크해두었다. 나도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세계지도를 붙여 내가 다녀온 곳들을 꾸며놓으리라 생각하며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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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은 겨울이 오면 오랫동안 해가 뜨지 않는다고 한다. 그 우울함이 무엇인지 그 당시엔 겪어보지 못했기에 알 수 없었다.(지금은 북유럽과 비슷하게 겨울철 일조량이 매우 적은 중국의 한 도시에서 살고 있기에 가끔은 약에 의존해야할 정도로 우울할 때가 있어 참 공감이 간다.)


이 우울을 이겨내기 위해 스웨덴 사람들은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집 안이 밝고 컬러풀해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인테리어를 하게 되었다고. 어찌보면 슬픈(?) 일이지만 슬기롭게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그들은 집 안과 자신에게 집중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집을 꾸미고 스스로를 대접하고 요리를 만들며 사람들에게 집중을 했을지도.


20151009_183904.jpg 아름다운 스톡홀름의 감라스탄


무튼 이렇게 나는 북유럽의 두 국가에서 삶의 스타일을 배운 것 같다. 어쩌면 여행이란 것은 이런 것일지도. 그때 먹은 맛있는 것과 아름다운 풍경은 쉬이 잊혀지지만 그 공간에서 만났던 사람과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멋진 마인드는 잊혀지지 않고 계속해서 남는다.


IMG_20151011_071545.jpg 떠나는 날까지 내 도시락을 챙겨준 스웨덴의 호스트, 그 마음이 사람을 살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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